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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장>2:필사와 단상

by 애니마리아


원서 제목은 지난번 밝혔듯 <HEART OF DARKNESS>이다. 직역을 하면 '어둠의 심장'이고 내가 읽고 있는 번역본의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출판사에 따라 <어둠의 심연> 혹은 <암흑의 핵심>이라는 제목의 번역본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번역본 제목에 정답은 없다. 출판사, 편집자, 시장성, 문학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원제와는 좀 더 다르게 지어지기도 하고 직역을 하기도 하며 요즘 영화 제목처럼 원어 발음을 그대로 가져오기도(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e 2022) 한다.



아직 완독 전이고 초반이니 전체적인 감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모험이나 사건 중심이기보다는 한 인물을 통한 작가의 사색이나 관념, 묘사와 같은 고차원적인 분위기의 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 내 생각에 그들의 통치란 그저 쥐어짜 내는 행위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싶어. 그들은 정복자였고, 정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난폭한 힘뿐이지. 그런 힘은 전혀 자랑거리가 못 되는데, 우리의 힘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나약함으로 인해 우연히 생겨난 결과물일 뿐이니까 말이야. 그들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저 손에 넣기 위해 빼앗았다네. 그것은 단지 폭력이 동원된 강도질, 대규모로 이루어진 악질적인 살인에 불과했고, 그들은 맹목적으로 그 짓을 저질렀다. 어둠과 맞붙는 자들에게 아주 어울리는 행동이 아닐 수 없지. 지구의 정복이라는 것은 대개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거나 코가 우리보다 살짝 낮은 사람들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기에,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기 흉하게 마련이야. 우리를 그런 흉함에서 구해주는 것은 이념뿐일세. 그 배후에 자리한 이념, 감상적인 구실이 아닌 이념,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헌신적인 믿음, 모셔놓고 앞에서 절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무엇....."


<어둠의 심연>16쪽







'말로'라는 선원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었을까. 우선 여기서 '그들'이란 고대의 로마군을 뜻한다. 기원전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 수백 년간 이들을 지배한 자들의 잔혹한 행위를 묘사하고 서술한다. 그들의 폭력과 악랄함을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말로가 목격한 그 당시 영국의 제국주의 현상을 드러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단순히 피부색이 다르거나 코가 좀 낮다는 이유로 정복이 이루어지며 그 흉악함 뒤로는 이념에 가려져 당연히 자행되었던 역사의 한 모습을 고발하는 듯하다. 1900년 전의 로마군에게 당한 그대로, 어쩌면 더욱 잔인한 모습으로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정복하며 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이는 제국주의 열풍이 지배했던 20세기 만의 이야기일까. 먼 옛날의 세계사에 불과할까. 우리는 여전히 이념과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관심이 있든 없든 그 영향력에서 살아가고 있고 삶의 이모저모가 맞물리고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정치와 경제, 문화, 예술까지도. 제주 항공기 사건을 다루면서 이제는 그곳을 허가해 준 당이, 당사자가 누구냐고 따지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다. 호평과 혹평이 난무한 '오징어 게임 2' 시리즈를 두고 오늘날의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 경제 상황을 논하기도 한다. O와 X로 나뉘는 사람들, 그 안에서 각자의 이념과 신념이 옳다 생각하며 폭력이 자행되고 정당화되며 때로는 음모론이 확산된다.



어찌 보면 참 우울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그저 몸을 맡길 수만은 없지 않을까. 완벽하게 방향을 바꿀 수는 없어도 조금이라고 나은 우리, 나은 세상을 꿈꾸는 존재가 인간이기에. 나쁜 일이 반복되더라도 절망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원래 인생은 그렇다고, 세상은 그렇다고 우울해하기에는 우리의 존재가, 생명이, 삶이 너무 낭비이지 않은가. 어제를 통해, 역사를 통해, 문학을 통해, 드라마를 통해서 오늘 조금이라도 배우길 소망한다.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더라도 포기하질 않길. 신이 정말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실수를 하더라도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결심 또한 우리의 자유 의지로 내릴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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