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꽃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참 많은데 유독 꽃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꽃처럼 어여쁜 그대라며 감탄하며 굳이 꽃을 꺾어 자신이 찬미하는 대상에게 선사하기도 한다. 꽃을 꺾지 않고도 향기를 오래오래 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익숙하지만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지는 시가 있기에.
시간을 들여 자세히, 오래 관찰하는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 나태주 시인의 시구 한 마디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고 그 어떤 들꽃 같은 사람에게도 누군가에 자신은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라는 말로 속삭여주는 목소리로 들렸을 테니까.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며 지루할 만도 한데 우리에게 꽃은 늘 특별한 의미를 선사하였고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뱀의 독을 자청한 어린 왕자의 용기도 자신만의 장미를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었지 않은가. 지구에서 피어난 장미들이 아무리 아무리 아름답고 많을지라도 어린 왕자의 장미는 그 어떤 장미보다 아름답고 소중했을 것이다. 오래, 아주 오래 바라보았을 테니까. 장미가 까탈스럽게 굴며 짜증을 내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웠을 테니까.
얼마 전 안드레아의 직장 동료분의 초대를 받아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초면은 아니고 봉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고 이후에도 종종 인사를 전하며 책 선물도 해 주신 살가운 분들이었다. 삶이 언제나 행복할 것은 아닐 텐데 낯을 가리는 내게 먼저 다가와 주시며 편안하게 해 주셨다. 직장 동료는 친구와 다른 존재이긴 하다. 친함 정도도 다르고 굳이 그 가족까지 신경 쓸 의무도 없다. 나는 혹여나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안드레아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되었다. 말 주변이 없어 어떤 대화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만나자마자 밝은 인사와 함께 내게 건네신 꽃다발 한 송이. 추운 기운이 감도는 저녁 시간, 유산지로 소중하게 감싸고 오신 그분이 내민 꽃다발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이런 것을 받아도 되나? 괜히 내가 와서 편안한 회식 자리를 너무 부담스럽게 만든 게 아닌가 싶어 죄송하기도 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어색할 수 있는 분위기는 꽃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러워졌다. 그때 갑자기 동료분이 질문하셨다.
"안드레아 님이 J 님에게 여전히 꽃 선물해 주시나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특히 부정적인 사실에 대한 답변을 포장해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안드레아가 당황해할 까봐 가끔 받는다고는 했으나 솔직히 연애할 때나 결혼기념일 20년과 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자주 받는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결혼 후에는 주부의 마음으로 고가의 꽃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앞서기도 하고 받기보다는 주는 게 더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도 막상 꽃다발로 환영과 환대를 받으니 소녀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설렌 것도 사실이다.
꽃은 단 한 송이만 받아도 기분이 좋다. 꽃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꽃에 담긴 의미, 나를 생각하며 미리 만남을 준비했다는 그 정성이 더욱 감격스럽다. 이전에 맛보지 못한 색다른 음식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문해 보았다. 꽃은 나에게 진정 어떤 의미인가. 받고 싶지만, 보고 싶지만 비싼 상품에 불과한 것일까. 그분의 질문에 좀 더 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뒷북치듯 내가 어떻게 게 말했으면 좋았을까 곰곰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지하철 안에서 꽃다발 한번 보고 안드레아 한번 보고 떠올린 생각. 마침내 그에게 꽃을 자주 받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꽃을 통해 그의 마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나를 꽃처럼 바라봐 주기 때문이다. 나를 그만의 꽃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물을 달라고 졸라도, 물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쏟아내도, 가시를 너무 많이 키워도, 너무 금방 시들어 변덕을 부려도 그는 나를 바라본다. 내가 짜증을 내도, 내가 속없이 웃어도, 내가 우울해해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의 얼굴을 살핀다. 나도 싫어하는 나의 추함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물을 준다. 내가 원하는 유리벽으로 바람을 막아준다. 자세히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그렇게 그만의 꽃이 된다.
그는 나만의 어린 왕자가 된다.
아름다운 꽃다발을 담을 꽃병이 없어 당황해하니 안드레아가 물병 입구를 잘라 꽃다발을 꽃아 주었다. 탐스럽고 조화로운 생화를 보니 마음이 무언가로 꽉 찬 기분이다.
아기자기한 애피타이저가 예뻐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식후 들른 건물의 한편에 여전히 빛나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와 눈사람이 동화처럼 우릴 반겨주었다.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정성으로 가족과 함께 이 겨울을 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