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DY>
* Title:<TIDY> ( 번역서:많아도 너무 많아!)
* Author: 에밀리 그래빗(Emily Gravett)
* PRINTED IN: 2016
* Publisher: Pan Macmillan
피트는 깔끔쟁이 오소리다. 늘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깔끔하게 해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꽃을 보면서도 늘 확인하며 혹시라도 툭 튀어나오는 줄기가 하나라도 있으면 사정없이 잘라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숲길에 떨어진 낙엽 하나를 참지 못하고 줍는다. 가을이 온 것이다. 낙엽 하나를 줍는다고 깨끗해질 터가 아니다. 이내 별처럼 많은 낙엽이 떨어지고 피트는 모든 낙엽을 청소해 버리는 집착을 보인다.
성이 차지 않는다. 낙엽의 근원인 나무 자체를 뽑아버린다. 나무속에 살던 새들, 다람쥐, 벌레 등 터를 잃은 동물들이 모두 떠나간다. 그 와중에 순진하게 만족하는 피트.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채 그는 중얼거린다.
"No mud
No leaves
No mess
No trees
Perfectly tidy and perfectly neat."
본문 중에서
완벽하단다. 하지만 숲의 본질을 잃어버린 숲이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풀 하나 남지 않아 터는 깨끗해졌지만 사막처럼 적막만이 남아있다. 이내 홍수가 들이닥친다. 이들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피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피트의 모습은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비춰준다. 청소기로 돌리지 않았다고? 나무를 쓸어버리고 길을 닦는다. 호텔을 짓고 도시를 만든다. 도시는 큰 도시로 거대하게 만든다. 필요 없는데도 자연을 청소한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 사냥을 하는 것처럼 그냥 발전을 향해서 나아간다. 자연이 죽어가고 기후가 망가지고 그것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다고 혹은 그냥 못 본 척 지나간다. 이제는 보호해야 할 때인데, 이제는 너무 늦어 회복조차 힘들 수도 있는데.
정리와 자연, 얼핏 짝꿍처럼 어울리는 느낌은 아닌 이 두 가지를 작가는 왜 연결했을까? 오소리이지만 피트는 결국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관점에서 쓰레기가 무엇이고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가정하에 유토피아를 생성한다. 자연은 그대로의 모습 자체가 아름다움이고 질서인데 인간은 그것을 정 반대로 인식하는 오류를 생성해 낸 것은 아닌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소리는 실제로도 무척 깔끔한 습성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배설물은 화장실을 따로 두고 한 곳에서 해결하며 주변을 지저분하게 만들지 않는다. 굴 안에 마른풀, 낙엽 등을 깔아 두고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등 청소 습관이 있기도 하다. 놀랄 만큼 사람의 습성을 닮은 오소리의 이야기지 않은가. 이 책을 읽는다면 정작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 집중해야 할 정리 대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듯하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영원히 무사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우리라고 돌아갈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피트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진정으로 정리해야 할 것은 자연이 남긴 낙엽이 아니다. 자연을 한계로 몰아넣고 아프게 하는 문명의 쓰레기이다. 마구마구 생산해 내고 쓴 후 알아서 자연이 정화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마음을 청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컴퓨터의 휴지통을 정리하듯 버튼 하나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중요한 사랑만 남기고 정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어디까지가 필요이고 어디까지 욕심인지 알 수만 있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