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HAIL MARY1
제목 Project Hail Mary처럼 언제부터인가 이 소설은 내게 일종의 프로젝트처럼 변해감을 느낀다. 아침에 하루 평균 삼십 분 내외 원서 읽는 시간을 할애하지만 이 책만큼 양적으로 많지 읽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주 어려운 책은 아니나 그렇다고 만화책 훑어보듯 넘길 수 없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500여 쪽의 장편소설, 이제 반 정도(258쪽) 읽었다. 하루에 두세 장, 심하게는 한 장도 채 읽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창고에 둘 수가 없다. 생각해 보니 첫 문장, 첫 장면의 독특한 설정에 이끌렸다.
"2+2는?"
주인공은 잠결이 이 질문을 듣는다. 짜증이 밀려오지만 어쩔 수 없는 무기력에 다시 잠이 든다. 몇 분 후 다시 여성의 목소리, AI 기계음으로 이 질문은 다시 그를 깨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말이 헛나온다. 감각이 없다. 보이지도 않는다. 겨우 움직인 손의 감각. 이상한 감촉의 침대에 누워있을 뿐이다. 다시 짜증. 대답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인사를 건네지만 '틀렸다'는 말이 돌아온다. 입술과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four의 첫음절 frrr에서 모음으로 넘어가기가 힘겹다. 컴퓨터가 원하는 시간이 늦어서일까. 기계음이 대답한다.
"Incorrect. What's two plus two?"
무한 루프의 시작 같다. 섬뜩한 반복의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짜증이 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이라도 알 것 같은 이 질문을 성인이 듣다니. 독자 입장에서는 허탈하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당연한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무슨 상황인지. 어쨌든 단순하지만 상식을 뒤엎는 듯한 상식적 질문에 여러 소설을 떠올렸고 두꺼운 이 소설을 시작하게 한 동력이 되었다.
우선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렸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당(Party)의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2 더하기 2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처음에 스미스는 4라고 대답하고 한동안 그 답을 고수한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끔찍한 고문과 세뇌교육이었다. 결국 그는 당이 요구한 대로 2+2는 5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게 된다. 당이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고 개인의 사고를 통제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내가 떠올린 타소설의 장면을 '오마주'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 소설의 동일 질문은 정치적 회의론도, 공포 조작의 의도로 제시된 것이 아니었다. 단 그다음 장면을, 이 알 수 없는 미스터리에 빠진 사람의 운명을 알고 싶은 심리가 발동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이 소설의 첫 장을 넘기며 작가 앤디 위어(Andy Weir)가 참 똑똑한 전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안나 카레니나>의 강렬한 인트로의 느낌도 있었다. 행복과 불행론에 대한 진지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가벼운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 '벽돌 책'에 대한 진입을 도와준 게 아닌가 싶다.
'재미있겠는데? 미스터리 SF라.' 몇 쪽을 더 읽었지만 작가는 쉽사리 답을 주지 않는다. 첫 발을 담그고 이 소설이라는 강을 건너가기로 결심했지만 이내 깊은 진흙에 빠진 느낌이었다. 이미 늦었다. '그냥 대충이라도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 착각. 생각만큼 대충 읽을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시점 문맥으로만 넘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이미 배운 개념조차 원어로 접하기도 했지만 이조차 사전과 AI의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다. 들어보았지만 완전히 숙지하지 못한 과학 용어들이 쏟아졌다. 단순히 뜻만 찾아서는 이해도, 재미도 반감되는 탓에 종종 확인하고 이미지를 조사하고 개념을 어느 정도 복습하며 넘어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자연히 한정된 시간에 읽는 양이 줄어든다.
astrophysicist 천체 물리학
infrared emission 적외선 방사
nebulae 성운(pl.)
IR bands 적외선 대역
molecular compound 분자 화합
magnetosphere 자기권
lopsided arc 한쪽으로 처진
ionosphere 이온층, 전리층(지구 대기)
p. 9~11/PROJECT HAIL MARY
원서를 읽을 때 많은 사람이 권하는 방법이 있다. 낯선 단어를 일일이 찾지 말라고. 흐름이 끊기기도 하고 독서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며 시간도 오래 걸려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며. 100% 다 찾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평소 흐름대로 읽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이 두 극단적인 원서 읽기의 중간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아슬아슬한 독서를 하고 있다. 몇 개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재미'이다. 어려운 용어, 개념조차도 알고 나면 희열을 느낄 만큼 신선하다. 작가의 철저한 조사에 감탄하고 유머에 쓰러지며 길고 긴 여정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느낌이다. 힘을 내어 읽고 지치고 읽으면서 충전한다.
메모와 포스트잇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양에 표시할 공간이 줄어들 무렵 문득 든 생각이다. 가끔은 거친 글로 정리하며 나머지를 읽어야겠다고. 간단한 요약으로 서평을 남기기에는 아깝고 멋진 작품이다. 그야말로 제목처럼 '장기 프로젝트 읽기' 소설이다. 하지만 '쥐라기 공원 시리즈' 이후 오랜만에 만난 설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