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판공(判功) 기간(의무 고해 기간)에 나는 고해실로 들어가 신부님께 나의 죄를 고백했다. 가톨릭에서 신부님은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나의 죄를 용서하신 후 보속(補贖 죄로 인한 나쁜 결과를 보상하는 일)을 주시는데 대개 '묵주 기도 5단'과 같은 과제를 주신다. 추측하건대 이 기간에는 고해하는 신자들이 많아 이 보속이 가장 무난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두 아이 모두 어릴 때 세례를 받았지만 몇 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나는 부모로서 부족한 죄를 매년 고백하는데 할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신앙은 강요할 수 없기에 기도만 하는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고해성사 때 신부님이 주신 보속은 특별했다. 집에 식물이 있다면 매일 물을 주면서 일주일 정도 기도를 해 보라고 권하셨다. 아이들은 종종 하느님을 멀리한다며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씀과 함께. 완벽은 불가능하다는 말은 평소에도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고 강물 흘러가듯 받아들인 부분인데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울컥한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신부님은 특별히 밝은 목소리와 에너지로 메시지를 전달하셨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해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우리 집 화분에 물 주기가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남편 안드레아가 큰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며 물을 주었다. 나는 식물을 종종 죽인다는 핑계로 가끔 들여다보기만 했었다. 고해성사의 보속 임무를 다 하기 위해 나는 작은 물 분무기부터 찾았다. 팔 골절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기에 매일 조금씩 물을 주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아이들을 위해 종종 기도를 하니 식물에 물 주기와 함께 일석이조로 잘 되었다 싶었다.
이 식물은 사실 몇 년 전 안드레아가 사 온 것이다. 아담하면서도 건강해 보이는 큰 잎이 보기 좋아 고른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럽게도 이 나무의 이름조차 몰랐다. 약속한 보속 기간에는 아이들의 세례명을 부르며 물을 주고 화살기도를 드렸다. 얼추 60~70cm 정도 되어 보이는 이 어린 식물은 커다란 잎이 매력이다. 지금 보면 가운데의 잎이 유독 연둣빛을 띠는데 그때는 그리 흥미를 두지 않았다. 보속을 시작하는 시점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문득 이 식물의 이름은커녕 종류조차 알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드레아에게 물었더니 마침 처음에 찍었던 사진을 보내주며 알려준다. 2018년에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고 종류는 '여인초'라고 했다.
무려 7년이 넘도록 우리와 함께 살았는데 이제야 제대로 식물의 종류를 알고 이름을 불러주며 물을 주었다니. 나의 무심함에 또 한 번 놀랐다. 7년 전처럼 가운데의 잎이 가장 연한 빛을 내뿜으며 생기 있게 자라고 있다. 기도와 물 주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돌돌 말려 있었는데 오래지 않아 활짝 펴지며 기존의 어떤 잎보다 크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 여인초의 잎이 이토록 컸던가 싶을 정도로 크고 넓게 자라는 이 식물은 매일 나의 인사와 기도를 반찬 삼아 물맛을 보고 있다.
다시 몇 주가 더 지나자 연둣빛 새잎이 더 자라 뒤에 배경처럼 있던 책장의 한 칸을 더 넘을 정도로 키가 자랐다. 나의 돌봄을 받을 때만 해도 2층 정도에서 새잎을 펼쳤는데 이제는 3층까지 도달한 것이다. 매일의 만남과 사랑의 인사, 희망의 기도가 여인초의 맥을 타고 자라며 내게 응답하는 듯하다.
안드레아가 상추에서 찾은 달팽이 두 마리. 차마 어디 버릴 수가 없어서 달팽이를 여인초에 놓고 물을 더 뿌려 주었다. 하루 지나니 땅속으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작은 정성에도 화답하며 또 다른 생명을 보듬는 여인초, 이제 이 식물은 또 다른 아이의 수호천사다. 매일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 생명들에 다가가 요한과 글로리아(옆의 다른 식물, 해피 트리에 붙인 이름이다)의 안녕을 빌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해 달라고 기도한다.
'메마른 땅에서도 물과 햇빛으로 자라는 우리 작은 요한과 글로리아 나무처럼 세례자 요한과 글로리아에게 사랑의 기도가 전해지길 바랍니다. 그들에게 심어진 하느님의 씨앗이 다시 깨어나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제자가 되게 해 주세요.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인답게 선한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일깨워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