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과 혐오, 뭐가 다른가. 둘 다 뭔가를 싫어한다는 어감이 있다. 경멸은 얕잡아보고 깔보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노여움이 있다. 화를 넘어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분노가 있다. 그저 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는 혐오보다 더 복잡하고 강도 높은 감정이 느껴진다. 그런 경멸조차 죽일 수 없는 사랑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 사랑을 경멸이라는 강력한 무기로도 죽일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를의 여인』의 작가 알퐁스 도데 Alphonse Daudet(1840~1897)는 프랑스 님 출신(Nîmes) dml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우리에겐 『별』, 『마지막 수업』이라는 단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필자 또한 학창 시절에 읽은 이 두 작품을 읽고 작품의 순수함과 안타까움을 마음 깊이 새겨 넣었던 기억이 있다. 작가와 작품이 늘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보통 인상 깊은 작품을 만나면 왠지 작품 속 인물이나 사건이 작가를 대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에 빠지곤 한다. 실제로 일치하거나 경험 및 생각이 반영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글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글쓴이의 흔적과 무늬가 남기 마련이다. 나태주 시인도 말했다.
'어떤 글이든지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일생이 보입니다. 삶이나 생활이거나 소망을 넘어선 일생입니다.'(137쪽/『너를 아끼며 살아라』 중에서)
*작품 속으로
화자이자 어느 마을의 방문객인 '나'는 마을 사람으로부터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다. '장'이라는 스무 살의 청년 농부로 예의 바르고 건장하며 너그러운 성격으로 많은 여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그의 마음은 오로지 한 여인, 아를에서 온 소녀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소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잘 알지 못하는 외지인이었고 바람기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장은 그 소녀와 결혼하지 못하면 죽어버리겠다고 선언한다. 자식을 위해 부모는 동의하고 결혼식을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의 정부(情夫)라는 남자가 장의 집에 나타나는데‥‥
청년 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문제는 부모가 아니다. 부모는 아를의 소녀가 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을 표했을 뿐 늘 아들의 뜻에 맡겼다. 악소문에도 결혼을 허락했고,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후에도 아들이 정 원한다면 여전히 결혼을 반대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상처 입은 영혼, 장에게 달려있었다. 소녀의 과거를 알고도 그녀를 계속 사랑할 것인가. 결혼을 감행할 것인가. 헤어질 것인가, 헤어진다면 그녀를 잊을 수 있는가. 그는 배신감에 분노하고 그녀를 경멸했다. 경멸과 분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 더욱 가중되어 자신의 과오와 착각을 지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까. 만약 사랑이 너무 커서 경멸조차 그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면 어쩔 것인가. 아무리 분노하고 본래의 삶에 충실하며 노력해도 사랑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이 작품의 주된 플롯은 청년 장과 아를의 여인 사이의 어긋난 사랑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사건이다. 하지만 필자는 아버지 에스테브의 장에 대한 연민과 사랑, 장의 어머니의 무서운 육감과 노력이 장에게 전달되었을지언정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 상황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어긋난 사랑은 남녀 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과 그런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애써 밝고 활기찬 태도로 살며 노력하는 장의 노력이 눈물겹다.
그날부터 장은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부모님을 안심시키려고 항상 유쾌한 모습으로 지냈습니다. 그는 무도장, 카바레, 유명한 축제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퐁비에유 마을 축제에서 그는 파랑돌 춤을 리드해서 추기도 했습니다.
25쪽/『아를의 여인』
이 작품은 1869년 『풍차 방앗간의 편지』에 실린 짧은 단편소설이었는데, 1872년 연극 대본으로 다시 썼다고 한다. 조르주 비제(Georges Bize)가 음악을 담당하여 작곡한 배경 음악으로 더 유명하다. 소설에도 나오는 '파랑돌 춤'은 본래 프로방스 지방의 전통 민속춤으로 <아를의 여인 모음곡>에도 수록된 대표 곡이다.
사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만들고 있으며 형태도 다양하다. 감정의 정도가 극단에 이를 때, 깊고 강할 때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기도 하다. 치유와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불행과 절망을 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도덕과 윤리의 테두리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인간의 행위, 정신세계를 열린 마음으로 탐색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별』의 순수함과 『 마지막 수업』의 울분이 공존하는 짧고도 강렬한 소설이다.
아를의 여인저자알퐁스 도데출판북도슨트발매2025.02.07.(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