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은 샘물과 같았던 빼빼로데이

by 애니마리아


11월 11일, 빼빼로데이에 소소한 행복이 있었다. 나는 평소 빼빼로데이는커녕 밸런타인데이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곤 하지만 안드레아(남편)는 반대다. 그 전날은 안드레아가 늦게 퇴근했다. 월요일부터 야근과 회식으로 피곤할 텐데도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빼빼로 과자 세트였다. 나는 이미 성인이 된 두 아이를 둔 엄마지만 막상 이런 선물을 받으면 다시 소녀 같은 감성이 일어나며 미소를 짓게 된다. 소싯적에 새로 나오는 과자가 있으면 그 맛이 궁금해 사 먹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말을 기억하고 샀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사 온 빼빼로 중에는 새로운 맛, '말차 맛 빼빼로'가 두 개나 있었다.



빼빼로데이 낮 시간이 되었다. 갑자기 문자가 왔다. 평소 상냥한 말투와 리액션으로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동기이자 동료분의 문자였다. 손 등에 그려진 커다랗고 붉은 장미와 그 옆에서 수줍게 피어있는 푸른색 꽃. 처음에는 그 사진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바로 내가 번역한 작품 <장미와 물망초>를 연상케 하는 페인팅이었다는 사실을.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책을 사서 서평을 써 주시고 응원을 해 주시는 등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행사장에서 내 작품을 구현한 듯한 그림을 손에 남기고 인증 샷까지 보내주신 관심과 미적 감각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날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카톡 문자를 확인하다가 지인의 생일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미 이틀이나 지났지만 내게는 소중하고 멋진 글벗이어서 늦게라도 축하하고 싶었다. 나중에 SNS에 표기된 그분의 생일 날짜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리운 마음, 고마운 마음을 작게나마 표현하고 싶었다. 우정과 선은 항상 상호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 번이라도 받으면 다른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전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혹여라도 그분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아주 작은 간식을 보냈는데, 그분도 바로 빼빼로 간식을 보내주셔서 쑥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만날 수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모르겠다. 이런 행위가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감사하게도 내가 받을 때도 내가 뭔가를 줄 때도 본인의 진짜 마음과는 상관없이 관심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 비싼 물건이나 과찬의 말에도 왠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부담이 있는가 하면 소박한 선물이나 말이라도 배려와 이해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나조차 기억을 확신하지 못하고 기대하지 않을 때 받는' 정(情)'이어서 그런가 보다. 이런저런 일로 괜히 마음이 심란한 요즘, 이렇게 찾아온 소소한 행복이 나를 위로한다. 작은 샘물이 되어 갈증을 덜어주고 잠시 숨을 돌리는 휴식처가 되어 준다.





900%EF%BC%BF20251111%EF%BC%BF071807.jpg?type=w1

아직도 유치한 나의 허한 마음을 웃게 해 준 안드레아, 고마워요.


900%EF%BC%BF1762835625607.jpg?type=w1

장미와 물망초를 기억해 주신 S 작가님, 감사합니다.


소중한 벗님, 행복한 나날 만들어가시길 바라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작은 용기가 서로의 응원으로(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