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몰라도 괜찮아(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by 애니마리아


노벨 문학 수상자이시지만 솔직히 한강 작가님의 시는 여전히 어렵다. 이미 언급했듯 우선은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일 테다.(언제쯤 이 말을 안 하게 될까) 그다음은 문맥이 없어 의미를 생각하기에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오래간만에 작가님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을 다시 펼쳤다.



「피 흐르는 눈 4」에서 '재가 되는 검은'(59쪽)이라는 문구가 어두워서 우울하면서도 뭔가 여운이 느껴졌다. 「저녁의 소묘」에서도 마지막 연의 '그의 눈을 적신 것은 조용히, 검게 흘러내리도록'(61쪽)이 무겁게 다가왔다. 무슨 아픔이 있었기에 눈물이 핏빛도 아닌 검은빛으로 흘러내리는 걸까. 아니면, 투명한 눈물이지만 마스카라가 번져 흘렀는지도 모른다. 알듯 모를 듯 비슷하면서도 거친 심상이 감지될 때면 이전에 읽은 소설이 자꾸 떠올라 나도 모르게 현재의 시를 자꾸 가리게 된다. 처음에는 도저히 모르겠다고 여겼지만 글로 다시 정리하려고 다시 읽어보니 '흑백 렌즈'라는 시어가 눈에 띈다. 그제야 시 전반을 흐르는 회색의 색감이 연결되었다.



그러다 「괜찮아」(75~76쪽)라는 시에 도달해서는 확 달라진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시에 몰입했다.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껴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중략)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75쪽/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중에서



초반에는 분명 시적 화자의 고뇌와 힘겨움으로 비슷한 정서가 흘렀음에도 시에 공감이 갔던 이유를 뭘까. 전체적인 분위기와 시어가 상징하는 상황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묘사와 서술이 적절히 배치되었고 눈앞에 시가 묘사하는 풍경이 그려졌다. 어린아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울고 있다. 엄마는 첫아이인지 그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속상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화가 나기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이냐고' 따지고 싶었을 테고 실제로 '왜 그래'를 세 번 반복한다.



문득 엄마는 생각한다. 여전히 이유는 모르지만 아이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어른처럼 조리 있게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뭔가 불편했거나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처럼 뭐라 설명하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이유에 스스로 모든 게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날 때, 어른조차 인과관계를 확실히 표현하며 울지 못할 때가 있다. 엄마는 그저 아이를 바라보며 '괜찮아'를 반복한다.



' '왜' 대신 '왜인지는 모르지만 너의 마음이, 네가 지금 힘든 건 알겠어. 내가 있잖니.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괜찮지 않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치 요즘 아이에게 자주 쓰라는 심리 용어, '그랬구나'의 다른 형태 같다.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면서 시간이 지나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달래주는 포근한 엄마의 심성이 느껴졌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고 여전히 우울하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조차 눈물을 그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길 것 같다.



10개의 시 중에 겨우 한 개 정도 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지라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그녀의 다른 시를 만나 다시 이해가 안 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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