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진 Aug 24. 2021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유기견 뽀밍이를 입양한 지, 한 달하고도 며칠이 지났다. 처음 강아지를 입양할 때 오빠와 나는 "강아지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줄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고민을 많이 했고,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에 영상 콘텐츠 제작으로 사무실 출근이 잦아졌는데, 나를 제외하곤 집에서 함께 있어줄 사람이 없어서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1시 오후 출근하고 6시 칼퇴하자마자 집에 오는 일을 반복하며 뽀밍이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최대한 함께 있으려고 했다.


얼마 전에는 뽀밍이 눈에 체리 아이가 생겨서 집에서 일주일 정도 요양하다가 수술을 받게 됐는데, 3시간마다 안약을 넣어줘야 해서 팀원들이 우리 집으로 출근하는 불상사까지 벌어졌다. 팀원들은 괜찮다며 흔쾌히 우리 집으로 출근해줬지만, 내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뽀밍이를 혼자 두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이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빠가 갑자기 휴무를 받았고 평소대로 9월에 있을 시험을 위해 학원 수업을 들으러 간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그것과 별개로 토요일 점심, 저녁 약속 두 개가 생겨서 중간에 다시 집으로 와야 하나, 뽀밍이를 데리고 가야 하나, 걱정하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빠가 학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뽀밍이를 보겠단다.


오빠는 일하느라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동생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니까 당연히 뽀밍이와 집에 있는 일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빠가 뽀밍이를 볼 테니 마음 놓고 오랜만에 나가서 놀고 오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순간 아차 싶었다. 실제로 뽀밍이가 집에 오고 나서 꼭 만나야 하는 약속이 아니고선 항상 집에서 뽀밍이를 봤고, 이렇게 집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건 나에게는 살면서 가장 드문 일이기도 했는데, 오빠는 내가 집에서 뽀밍이를 본 것이 고맙고 또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은 거다.


물론 오빠가 "이때까지 자기가 뽀밍이 봤으니까, 오늘은 내가 볼게"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난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고생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던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며 함께 있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랄까. 사실 9월 초가 오빠 실기 시험이라 학원에 나가는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할 텐데, 그런 결정을 혼자 내려주고 또 나를 안심시켜주는 그 모습이 참 고마웠고 든든했다.


뽀밍이 가 우리 집에 오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그중에 가장 큰 변화는 서로에 대한 마음가짐일 거다. 언젠가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됐을 때 그 모습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순 있어도, 상상을 하긴 어려웠으니까. 가끔 오빠가 뽀밍이를 아기 안듯 안고 흔들흔들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를 저렇게 재우겠구나 싶고, 뽀밍이를 향한 꿀 떨어지는 눈빛을 보면 우리 아이를 저렇게나 사랑스럽게 바라보겠구나 싶다.


한 생명체를 통해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또 오빠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보게 됐다. 이미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고, 확신을 가지고 결혼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재밌고 신비롭다.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본다는 것, 알지 못했던 부분을 계속 알아갈 수 있단 건 정말 행운이다. 우리의 더 큰 사랑을 위해, 행복을 위해 앞으로도 많은 걸 함께 공유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싶다.


오빠의 한마디로 인해 오빠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매력을 느꼈고, 오늘도 오빠 사랑의 매력에 빠져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가 본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