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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희 Apr 24. 2024

첫 퇴사, 첫 이직

한국 취업시장에 뛰어들다


“Will you come back to work at this company?”
(기회가 된다면 미래에 다시 이 회사로 돌아올 의향이 있으십니까?)

“Yes and Yes”
(네!)


퇴사면담의 마지막 질문,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나의 대답, Yes and Yes.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이었다. 몇 해 다니다 이직할 줄 알았는데 매번 어휴 그만둬야지, 때려치워야지, 더 이상은 못 다니겠네 구시렁대다 십 년이 흘렀다. 이렇게 오래 다닐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퇴사 면담을 통해 깨달았다. 아, 나는 이곳을 많이 좋아했구나. 회사란 말 대신 이곳이라고 말한 이유는 결국 나를 오래 붙들고 버티게 한 것은 좋은 사람들과 일의 희로애락이었기 때문이다. 와중에 있을 때는 그렇게 피를 말리는 것 같더니 막상 떠나보니 좋은 추억들만 남았다. 그러나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었다. 이십 대에 입사해 최선을 다해 영혼을 갈아 청춘을 받치고 서른을 넘기고 퇴사했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첫 퇴사와 함께 한국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직도, 일하는 한국도 모두 처음이라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한계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캐나다에서는 언어가 내 가능성의 한계를 가로막는 기분을 종종 느꼈기 때문이다.


'나' 홍보하기

채용공고는 주로 LinkedIn(링크드인)을 통해서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외국계 기업이거나 글로벌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라면 링크드인 활용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링크드인은 직장인들의 페이스북 같은 존재다. 예쁘게 나온 사진보다는 자신감 넘치고 믿음직스러운 인상의 사진을 프로필로 올리고 학력과 경력뿐 아니라 네트워킹을 통해 채용시장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돋보일 수 있도록 한껏 뽐내는 곳이다. 비지니스 스쿨에서 경역학을 전공했는데 과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대학교 1학년때였던 것 같다. 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링크드인부터 만들라고 했다. 비지니스는 네트워크가 생명이고 나만의 브랜드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처음에는 홍보 아니야? 하고 의심했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링크드인 프로필을 갖고 있었고 채용시장에서 링크드인의 위력은 커져갔다. 링크드인 홍보글 같지만 정말로 나는 링크드인 덕을 톡톡히 봤고 한국에서의 두 번째 이직도 링크드인을 통해 성공했다.


이왕이면 외국계를 선호했지만 외국계 회사 입장에서는 한국의 시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영어능통자인 것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나는 경쟁력이 없었다. 오히려 해외진출을 꿈꾸고 있는 한국 회사에 지원하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내가 원하는 것과 회사가 원하는 것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새로운 도전에는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선은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를 찾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이 섰다. 어디서 내 경험을 제일 값어치 있게 쳐줄까? 나를, 어디서, 누가, 왜 필요로 할까? 를 중점으로 두고 접근했다.  


이력서에 사진을? 왜?

한국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첨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지원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한 몇몇 곳들은 사진과 나이를 요구했다. 사진과 나이라니! 당시 증명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던 나는 부랴부랴 (집에서 찍은)링크드인 프로필 사진을 첨부해 보냈다. 관상은 Science라는 말을 부단히 신뢰하는 것일까?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 더 유리한가? 느껴지는 분위기와 인상으로 후보자를 점쳐보려는 심상인가?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급하고 아쉬운 것은 회사가 아니라 나니까. 나이는 왜일까? 너무 어려도 안되고 너무 늙어도 안 되는 것일까? 나이가 스펙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생각해 보면 캐나다에서도 면접을 통해 대략적인 나이를 가늠할 수 있고, 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 나이와 연관되는 것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또 면접 때의 비치는 인상과 외적인 분위기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류부터 평가 항목이 된다는 것은 조금 슬펐다.  


커버레터 대신 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를 처음 작성해 보았다(경력직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지 않는 곳도 많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인터넷에 나온 양식에 맞게 열심히 소설 쓰는 것처럼 내 인생과, 가치와, 일에 대한 신념에 대해 열정적으로 썼다. 캐나다에서는 자기소개서 대신 Cover Letter를 쓰는데 보통 A4용지 반에서 한 장 정도의 분량이면 충분하다. 간단하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왜 이직을 하려고 하며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에 어떤 시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지, 한마디로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를 요약하면 된다. 때문에 장황한 서사보다는 자신을 잘 어필할 수 있는 인트로와 회사의 인재상과 직무 역량을 연결시켜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B사의 서류전형에서는 소설, 영화, 노래나 시 중 하나를 골라 자신을 소개해야 했다. 뻔한 자기소개서보다 훨씬 나은데?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서 B사의 자기소개서 양식은 나를 흥분시켰다. 고민 끝에 헤르만 헤세의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지와 사랑)> 라는 책으로 열심히 나를 소개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광탈했다. 친구는 자소서의 문제가 아니라 직무가 잘 안 맞았을 것 같다고 위로했지만, 나는 아직도 자소서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것을 보니 글 쓰는 일에 미련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일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한 마음과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일하고 싶지는 않은 거만한 마음이 교차했다. 일을 할 때는 그렇게 일하기 싫더니, 막상 또 일을 찾으려 하니 초조했다. 이력서를 쓰고 나니 그동안의 경력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마음과 더 열심히 살걸 하는 후회도 같이 들었다. 나를 알아봐 주는,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는 꼭 있을 것이다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를 믿었다.





※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생각과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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