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심리학·트라우마, 마음 회복의 길
무력하게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아이를 바라보던 그 순간, 시간은 공기처럼 무겁게 가라앉았고, 내 심장은 손에 쥘 수 없는 공허 속에서 요동쳤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특히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은, 세상의 모든 상실감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자정을 넘어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응급차 속에서 나는 숨을 죽였다. 아이가 살아 있기를, 무사히 병원에 닿기를,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 자리에서 멈춰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응급차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호흡은 가빠오며 공포가 몸 구석구석을 에워쌌다. 그날 위급했던 응급차의 경적 소리는 내게 트라우마로 각인되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의 사진을 보지 못했다. 아이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다시 무너질까 두려웠고,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차마 아이의 사진을 바라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상실은 단순한 아픔을 넘어, 삶의 틈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이처럼 아픔이 깊이 각인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 애도(Grief)의 과정이라 배웠다.
애도는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상실의 아픔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치유와 성장을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많은 사람이 애도를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애도 심리학자들은 이를 ‘사라진 존재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떠난 이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와의 소중한 추억을 마음속 깊이 담아 남은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애도의 여정은 사람마다 다르며, 정해진 순서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감정의 파도를 겪는다.
• 첫 번째 단계, 충격과 부정: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라는 믿음이 마음을 덮는다.
• 두 번째 단계, 분노와 원망: ‘왜 하필 나에게?’라는 절규가 세상과 신, 떠난 이에게 향한다.
• 세 번째 단계, 타협과 우울: ‘만약 그때 내가 ~했다면…’ 자기 책임감 속에서 깊은 무력감에 빠진다.
• 네 번째 단계, 수용: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이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들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이를 억누르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야말로 애도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죽음을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경향이 강하며, 슬픔을 내면에 담아 둔다.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단장지애(斷腸之哀)’, 즉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표현되지만, 사회적 압력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가슴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이런 문화적 분위기는 때때로 섣부른 위로, 예를 들어 “이제 잊고 힘내” “산사람은 살아야지” 같은 말로 애도의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
억눌린 슬픔은 ‘지연된 애도(Delayed Grief)’ 나 ‘복합 비탄 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슬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기억을 나누며 치유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장례식 이후에도 고인을 추모하는 모임을 갖거나, 애도 상담 전문가에게 감정을 털어놓는다. 슬픔을 억누르기보다 충분히 느끼고, 그 속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가치를 둔다.
나 역시 한국문화의 습성대로 20년간 아이를 가슴에 묻고 살았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쉽게 꺼낼 수 없던 아픔이었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며 글과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이의 웃음을 떠올렸다. 기억 속 작은 웃음, 손끝에 닿을 듯한 체온은 내 마음속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녹여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슬픔 속에서 아이와 새로운 대화를 나누며 삶을 다시 배워갔다.
• 감정 표현하기: 슬픔, 분노, 죄책감 등 떠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충분히 표출한다.
• 떠난 이를 기억하기: 사진을 보거나 추억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시간을 갖는다.
• 전문가와 함께하기: 애도가 길어지거나 트라우마로 발전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결국 애도는 떠난 사람을 잊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의 관계를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키는 여정이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기억하며, 남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슬픔을 마주하는 용기야말로 삶의 가장 깊은 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실의 아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픈 순간조차, 그 모든 것이 사랑과 기억으로 남아 나를 지탱한다.
그 힘으로 오늘도 조용히 아이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숨을 고른다. 삶과 죽음, 슬픔과 사랑이 뒤엉킨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기억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