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29)

임시양육자

by 도미니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40년 넘게 살아온 나름의 시간 동안 나에게 밴 버릇은 어떤 이슈를 겪을 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박에 좋은 일이라고 좋아했지만 두고두고 악수인 경우가 있었고, 왜 이런 일이 생겨..? 하고 황당해 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득인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섣불리 판단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지나다보면 저절로 물과 알맹이는 분리가 되더라. 그 때 건져내며 좋아해도 늦지 않는다.

사전처분이 도착한 날은 금요일이었다. 받자마자 변호사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변호사님도 자세한 내용은 보지 않은 듯 했다. 일단 시간이 있으니 다음 주 월요일에 이야기해보자는 답신을 받고 오히려 안도했다.

진짜로 천천히 판단해도 되는 일이구나. 급하게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사전 처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1. 사건본인의 임시양육자는 원고로 한다.

2. 피고는 원고에게 매달 말일에 양육비 50만원을 지급한다.

3. 매주 토요일 2시부터 8시까지 피고는 사건본인을 면접교섭할 수 있다. 원고는 이에 협조해야 하며, 피고는 3일 전까지 내용을 협의하여야 한다.

사전처분으로 내가 겪는 유익을 따져보면,

1) 이제, 정말 안심하고 아기를 보낼 수 있다. 이제 난 공식적으로도 우리 아기의 양육자다. 소를 제기한 지 9개월 만의 일이고, 그 사이에 별 일이 없어서 조금 의미가 퇴색했을 뿐이지 처음엔 아기를 빼앗길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 지 모른다.

친정을 들고 날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고, 어린이집을 옮겼다.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아기는 엄청 고생을 했고, 그 때 난 연수를 가느라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다.. 어린이집에다가도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정을 말하며 절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아기를 보내서는 안된다고 몇번이나 신신당부를 했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또 정말 다행하고 좋은 일이다. 정말, 마음을 놓아도 좋다.

2) 아이가 아빠를 만날 수 있다.

며칠 전, 아이가 좀 아팠다. 흔히 걸리는 감기였지만, 코가 꽉 막히고 열이 나는 아기를 안고 재우다 옆에서 같이 잠이 들었는데. 아이가 일어나 내 가슴을 두드려 깨운다.

엄마, 나 아빠가 보고싶어.

아이는 졸릴 때, 종종 아빠를 찾았었다. 그 때마다, 아빠가 일을 열심히 하러 가셨다고 이야기했었다. 아빠도 우리 애기 정말 보고 싶으시대. 아빠 일 열심히 하고 만나자. 또 아빠는 거기까지였으니, 달래면 그 정도에서 응응. 하다 잠드는 아이였는데, 열에 들떠서 아빠를 찾는 말은 또, 다르게 느껴진다.

울지 말자. 서럽거나 아프게 듣지 말고, 내가 그만큼 잘한 거라고 생각해야지. 아이에게 아빠를 좋은 사람으로 새긴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잘했다는 증거야. 잘하고 있어. 정말 잘한 거잖아. 슬프지 않아. 괜찮다. 괜찮을거야.

생각과는 또 다르게 속상함을 물고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우리 아가.. 아빠 보고 싶지? 우리 조금만 참다가 아빠 만나러 가자? 아빠도 우리 아가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엄마한테 그랬어. 꼭 엄마랑 같이 아빠 만나러 가자..!

우리 아기 마음 어디쯤, 아빠와 엄마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이 아이는 앞으로 가족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될까.

괜시리 남들과 자신이 비교되고, 엄마에게 서러움이 북받친

어느 날 어느 순간.

날, 원망한다면,

달게 받자. 그 원망 그냥 받아줘야지. 그 각오까지 하고 이 강을 건너자.


이제, 처분만 확정이 되면. 우리 아가 아빠를 만날 수 있다. 일곱밤 자고 나면 아빠를 만날 수 있어! 약속해줄 수 있다니

두고 두고 좋은 일이 틀림 없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오래 걸렸어요.

요즘 재판지연이 심각하다더니, 정말 2년은 갈 건가 봅니다.

사실 저같은 - 특별한 사건이 없는 데도 합의가 안되고 소송으로 가는, 케이스들이 사건을 늘리는 데 한몫 했을 터라. 할 말이 없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결국은 제가 아이를 지키는 것으로 끝이 날 테니까요.

소송 진행이 더디다보니 글도 늦었어요. 그럼에도 읽어보시고 응원 주시는 마음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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