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사회 편)
1995년 2월 24일 금요일
결국 아파트를 정리하고 신도시로 이사를 하고 며칠이 지났다. 준영이는 다행히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 집은 좁아졌고 정들었던 이웃과도 헤어졌다. 어른인 나만 이 변화가 낯설고 아쉬운 걸까. 무리해서 집을 장만했던 게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아이에게 풍요를 주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한 것일까? 그저 다른 사람들이 했던 방식을 합법적으로 따랐을 뿐인데 결국 책임은 개인의 몫이다.
무엇보다 친정엄마에게 전적으로 육아를 맡겨야 하는 나는 엄마를 따라 이사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할머니가 육아를 해 줄 수만 있다면 놀이방에 보내는 것 보다야 백배 낫다고 판단했다.
2026년 1월14일 수요일
결혼 당시, 우리는 젊었고 거칠 것이 없었다. 대학을 나왔으니 어떻게든 살길이 열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대기업 증권사에 다니던 남편의 수입은 넉넉했고, 우리는 적당히 소비하면서 전형적인 중산층의 삶을 누렸다. 육아로 수고하는 엄마를 모시고 여행도 다니고 명품은 아니지만 정품은 살 수 있었다. 사치한 것은 아니지만 궁색하지도 않았다. 앞 세대가 일궈놓은 산업화의 탄탄대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 삶도 영원히 우상향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저축할 여유는 없었다. 상계동에 마련한 아파트 대출금과 이자가 곧 저축이라는 계산이었다. 청약통장으로 당첨된 아파트가 우리 미래의 디딤돌이었으니까 당시로서는 틀린 계산이 아니었다. 대출금과 이자는 두렵지 않았다. 살아있는 청약통장으로 요지의 아파트에 당첨되었을 때, 우리는 미래를 다 가졌다고 믿었다. 살고 있는 집 전세금이면 새 아파트의 중도금 정도는 거뜬히 해결될 계산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아파트값 폭락은 잔인했다. 전세금을 내주기 위해 당첨된 아파트와 살던 집 모두를 처분해야 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자산이 없었던 우리에게 대안도 없었다. 만약 그때 단 한 채라도 버틸 힘이 있었다면, 이후 폭등한 집값은 우리에게 '자가소유'를 선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의 파고는 우리를 '무주택자' 쪽으로 밀어 넣었다. 지독히 운이 없던 그 몇 년 사이, 우리 가정경제는 휘청였다.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고 두려움이 없었다. 다만 시기가 조금 늦춰진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당시 우린 여러 가지 이유로 신도시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육아를 전담했던 친정엄마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교회가 1기 신도시인 경기도로 옮기면서 교회를 따라 이사하기를 원하셨다. 두 아파트를 다 던진 우리는 이 참에 육아를 핑계로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를 따라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그때는 몰랐다. 한국 사회에서 '집'이라는 존재가 가정경제의 전부이자, 계급을 가르는 결정적 잣대가 된다는 것을.
부의 축적, 자녀의 학벌, 직업적 안정성 같은 동경의 대상들로부터 조금씩 멀어졌다. 잠깐 진입한 적도 있었으나 오래 머물지 못했다. 개인의 선택이 모두 성공할 순 없다 해도 평균 결과치는 마이너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슈퍼리치), 누군가는 자동차로 빠르게 달린다(상속형, 노력형 부자). 자수성가한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른다. 나는 그 곁을 묵묵히 두 발로 걷는 사람으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걷는 삶이 때로는 느리고 고단하며, 남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한 때 자동차로 달리는 편리함을 맛본 적도 있고, 자전거의 시원한 속도감을 느껴본 적도 있다. 비행기로 가는 슈퍼리치의 삶은 애초에 그들만의 세상이라 여기고 사실 동경하지도 않았다.
탈것을 가진 이들은 종종 걷는 이들을 안쓰럽게 보거나 무능하다고 치부한다. 그들의 시선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지 모른다. 걷는 사람으로 꽤 오래 살았고, 앞으로도 자전거나 자가용 따위를 구입할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서 말한다면 걷는 삶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걷는 사람들 중엔 드물지만 모든 걸 다 버리고 일부러 걷는 삶을 택한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탈 것을 버리고 걷는 사람들 중엔 자전거나 자가용을 잘못 사용해서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까지도 상하게 하거나 죽일 뻔한 경험이 있었다. 아니면 그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걷는 사람으로 오래 살아보니, 이 길 위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분명히 있다. 비행기나 자동차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길가에 핀 작은 풀꽃과 이웃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기쁨 말이다. 못 가진 자의 변명이라 해도 좋다. 나는 오늘도 걷는 행복을 만끽한다. 느릿하게 걷기에 곁에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깊게 소통할 수 있고, 풍경을 음미하며 빠르게 지나칠 때는 놓쳤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한다. 비록 두 발뿐이지만, 멀쩡한 다리로 내 속도에 맞춰 대지를 딛는 이 감각이 꽤 근사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속도로 걷는다.
* 다행히
요즘은 모두가 한 방향으로 줄 서서 달리는 시대가 아니라,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사형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방사형으로 가는 사회에서 어떤 도구를 가지고 갈 것인가도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