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가 살아내고 있는 삶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존경심이 든다. 이런 문장을 보면 현우가 어깨를 으스대면서 ‘쌤, 저잖아요.’라고 할 게 훤히 보이고, 거기에 나는 또 겸손하라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그래도 현우의 삶이 존경스럽다는 문장을 쓰는 데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다. 현우는 ‘모든 학생에게 한계는 없다’는 내 교육관을 초고속으로 확인시켜주었다.
2021년, 특성화고등학교 영상과의 초임 교사가 된 나는 2학년 담임을 맡게 됐다. 첫 담임이라 더 그랬겠지만, 우리 반 학생들 하나하나 다 애정이 갔다. 그중에서 현우와의 방과 후 수업을 에세이로 남기게 된 것은 방과 후 수업을 듣는 학생이 오직 현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심화반 및 영화과 입시반’이라는 이름으로 호기롭게 방과 후 수업을 열어 홍보했지만, 20명이 채 안 되는 3학년 영상과 학생 중 영화 수업을 듣겠다는 학생은 단 2명이었다. 또 모집된 두 명 중 다른 한 명이 영화과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방과 후 수업을 그만두면서 현우와 1대 1로 수업하게 된 것이다. 나는 현우에게 세뇌를 시켰다. 이건 완전 과외다, 그것도 어디 가서 배울 수 없는 유익한 수업이다, 라면서 말이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영화 비평, 시놉시스 작성 및 피드백과 수정, 장면 분석 등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노력으로 수업했다. 현우는 몰랐겠지만, 나는 영화과를 가고 싶다는 현우에 대한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현우에게 했던 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우에게 대학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2학년 첫 상담에서 현우는 운동을 그만두고 뭘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1학년 때 평균 성적이 20점대였기에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대학 가려면 성적이 좋아야 돼. 너 지금 성적으로는 아무 데도 못 가.”
내 말에 현우는
“그래도 엄청 나쁘지는 않잖아요?”
라고 답했다. 그만큼이나 현실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1등 해야 돼. 이번 중간고사에서 열심히 해 봐. 너 1등 하면 쌤이 대학 보내줄게.”
현우는 링 위에서 청소년 대회 2위를 할 만큼 재능이 있었지만 많은 상대 선수들을 만나고 실력에 대한 슬럼프가 오면서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진로에 대한 길을 잃고 보낸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은 현우의 말을 빌리자면 완전히 사라진 시간이었다. 1교시에 엎드려서 눈을 뜨면 6교시, 7교시인 생활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기대해보겠다던 내게 아주 자신감 있게 '네!' 하던 현우는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다른 수식이 다 필요 없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자체로 영화 같은 일이었다. 2학기가 되자 뭘 할지 모르겠다던 현우가 영화를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1등 하면 대학을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약속이었지만 나의 전공수업을 듣고 미래를 결정했기에 더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한계를 깨부숴버리는 성장을 보여준 현우에게 감사를 느꼈다. 교사 생활 첫해에 이미 내 교육관의 타당성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균 20점대이던 애가 그것도 전교 1등이라니!’와 같은 것을 두고 현우가 살아내는 삶을 존경한다고 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아이의 삶에 존경심이 드는 건 자신의 ‘사라진 시간’에 대한 후회를 노력으로 채우면서 픽셀을 수놓듯 자기 인생의 장면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가 하기 싫어 운동을 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꿈이 생기면서 매일 3시간만 자고 공부했고, 시험 기간과 관계없이 평균 4시간 수면하면서 영화 공부를 해왔다. 매일같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분석문을 써보고 하더니 어느 순간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나는 2학년 겨울 방학 때 찍을 시나리오 한 편을 써보라고 했고, 그렇게 겨울 방학 때 찍은 영화로 전국 청소년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다.
꿈이 없는 사람도 많고, 꿈이 있어도 자신에 대한 의심을 품는 사람이 많다. 꿈을 이루는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게 있고, 나는 특별하지 않으니 이룰 수 없을 것이라 여기는 학생들이 실제로 많다. 그리고 그건 비단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성인들도 그렇다. 고백하자면 방과 후 수업을 하기 전에는 내 능력을 발휘해 현우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현우한테서 뭔가를 배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 같은 선생님을 모토로 학교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하고 있지만, 학생들을 가르쳐줘야 하는 존재로서만 여겼던 것 같다. 방과 후 수업을 하면서 현우가 하는 글에 대한 고민, 앞날에 대한 준비 등 삶을 대하는 태도를 엿보면서 나 역시 현우에게 많은 걸 배웠다. 그래서 그걸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내게 작가라는 꿈이 여전히 있음을 안 현우는 ‘이제 쓰면 되죠.’라고 말했다. 입시를 부숴버리자며 의욕 넘치게 시작했던 방과 후 수업에서 우리는 입시 그 너머의 무언가를 배웠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조력하는 동료가 된 것이다.
현우에게 방과 후 수업 때 했던 대화들을 엮어 글로 써보자고 제안하고 방과 후 수업의 시작이 어디였을까 생각해보니 현우가 내게 ‘사랑이 뭐예요?’라고 질문한 그 날부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 수업은 3학년이 되어 시작한 것이지만, 2학년 2학기 때부터 현우는 줄곧 매일 쓴 글을 들고 와서 피드백해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 처음으로 현우가 내게자신의 마음을 얘기한 날이 있었다. 방과 후 연애 상담, 그날이 방과 후 수업의 뿌리라는 데에 현우도 나도 동의했다. 이 이야기는 현우와 수업에서 다뤘던 영화 중, 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이 아닌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나눈 실제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2022년 10월, 지금 현우는 한창 대학 입시를 치르고 있다. 현우는 최선을 다했다. 학교의 모든 선생님이 쟤는 뭐라도 하겠다, 라 말할 정도로 말이다. 입시의 결과야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지만, 현우는 계속해서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향해서 달려갈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있는 자리에서 계속해서 꿈을 꿀 용기가 생겼다. 현우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아마 기억이 안 난다고 할 것 같아서 글로 남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