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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방과 후 수업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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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앤펭귄 Oct 30. 2022

자발적 이별: 봄날은 간다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현우: 선생님, ‘봄날은 간다’ 봤습니다. 짜증나던데요?

소현: 왜?

현우: 아니, 은수가 너무 상우를 이용하는 느낌이었어요.

소현: 어떻게?

현우: 자기 마음대로 상우를 사랑했다가 또 마음대로 버리려고 하는 게 이기적으로 보였어요.

소현: 그치, 엄청 이기적이지. 그러면 은수가 상우랑 같이 일하는 동안은 그래도 사랑을 한 건 맞는 거 같아?

현우: 네, 그때는 사랑한 거 맞는 것 같아요.

소현: 은수가 가장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던 장면은 뭐야? 가장 짜증 났던 장면.

현우: 이별하자 해놓고 다시 만난 장면이요.

소현: 여러 번 만났다 헤어지는데,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 거야?

현우: 엔딩에 카페 신이요. 괜히 감정이입이 더 되더라고요. 저번에 말했던 걔도 약속을 어기고 은수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게 생각나서…. 그래서 더 짜증이 난 것 같아요. 뭐, 지금은 친구로 지내지만.

소현: 아 결국 친구로 정의된 거야?

현우: 네….

소현: 미련 있어 보이는데.

현우: 그냥 넘어가시죠.

소현: 네~. 그럼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현우: 그 장면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의 최고의 명대사가 있는 장면이에요.

소현: 뭐?

현우: 상우가 은수한테 이런 말을 합니다.“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 조심해!”

소현: 알지 그 장면!

현우: 아 진짜, 너무 웃겼어요. 그리고 슬펐어요.

소현: 왜 슬펐어?

현우: 상우가 라면보다 본인이 못하다고 느껴서 한 대사잖아요.

소현: 맞아. 웃픈 장면이야.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게 있어?

현우: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서 봤는데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을 찾지는 못한 것 같아요. 오히려 은수한테 엄청 휘둘리는 상우 보면서 공감도 되고 더 휘청거리는 느낌이 강했어요.

소현: 그치, 분명 상우가 계속해서 흔들리지.

현우: 쌤이 저한테 이 영화를 추천해주신 이유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제가 여쭤봐서잖아요. 대체 어디서 그 방법이 나온다는 거예요?

소현: 현우가 제일 짜증 났다던 카페 신 바로 다음 장면. 거기서 찾을 수 있지.

현우: 그… 둘이 거리에서 걷는 장면이요?

소현: 네. 정확히는 걷다가 상우가 은수가 준 화분을 다시 되돌려주는 장면이요.

현우: 네. 그게 왜요?

소현: 처음으로 상우가 은수를 자발적으로 밀어낸 장면이잖아요.

현우: 아…! 근데 그것만으로 밀어낸 거라는 표현이 되는 걸까요?

소현: 그럼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우가 완전한 이별을 고한 장면이죠. 더는 너의 무대에서 춤추지 않겠다, 그런 장면.

현우: 아, 그래가지고 마지막에 상우가 웃고 있었던 거네요.

소현: 그치. 은수랑 함께 했던 녹음 일이 상우가 은수를 만나기 전부터 원래 하고 있던 상우의 일이고, 은수와 이별하고 다시 자신으로 돌아온 거라고도 볼 수 있지.

현우: 네, 이제야 풀리네요. 마지막에 왜 상우가 웃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드디어 은수로부터 해방된 상우의 미소였던 거네요.

소현: 그렇지. 그러면 이제 내 얘기를 듣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너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겠어?

현우: 음….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을 하는 거죠.

소현: 그래, 일종의 그런 거지. 좀 더 매끄럽게 표현하자면, 타인보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거지. 지난번에 얘기했던 거 기억나?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타인이라고 했던 거.

현우: 네.

소현: 아무리 상우가 용을 써도, 은수한테 전화하고 찾아가도 은수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잖아. 그래서 계속해서 은수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고,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지는 상황만 반복이 됐어. 근데 처음으로 상우가 이 관계를 끊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 뫼비우스 띠 같던 고리가 드디어 끊어진 거지. 결국 타인의 마음은 내가 결정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니까. 상우가 결정한 그 마음이 상우를 자립시킨 양분이 됐던 거야.

현우: 아, 그래서 화분이 나왔던 거군요.

소현: 뭐, 지금껏 은수가 상우 마음에 심었던 화분을 다 걷어냈다는 걸 비유했을 수도 있겠지? 너 역시 고백하지 않기를 선택한 것도 너의 마음이고, 그 애와의 관계를 친구로 정의하겠다고 선택한 것도 너의 몫이야.

현우: 그럼 제가 차인 건 아니네요.

소현: 내가 언제 차였다고 했어?! 고백도 안 했지만 차인 기분이라고 했지.

현우: 네, 네, 네~!

소현: 희망적인 건, 넌 타인에게 너 스스로 휘둘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휘둘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현우: 아, 제가 직접 제 마음을 결정했으니까요?

소현: 응.

현우: 네, 앞으로도 마음의 결정을 잘해야겠네요. 상우처럼 라면보다 못한 존재가 되면 안 되니까요.

소현: 그 장면이 진짜 꽂혔나 보네.

현우: 네. 왜냐하면 뭔가, 라면이 은수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것 같은데 상우한테 ‘빨리 와서 라면이나 끓여’라고 하는 대사가 상우를 향한 마음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한 것 같았어요. 이제는 라면이나 끓이는 정도의 존재가 된 거죠. 그래서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고 욱하는 상우의 외침이 웃기고 슬펐던 거예요.

소현: 예전에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어떤 남자분이 자기 여자 친구한테 자기가 얼마큼 좋냐고 물어봤는데, 여자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만큼이라고 대답해서 감동적이었다, 뭐 그런 글이었어. 그런 맥락에서 너의 해석을 보면 은수한테 라면은 진짜 좋아하는, 일상에 함께하는 무엇이었고 그래서 항상 사랑하는 상우와 함께 라면을 먹었던 거야. 근데 다른 사람이 생긴 때를 기점으로 상우가 라면보다 못해진 거라고 볼 수 있겠네.

현우: 네. 재밌는 에피소드네요. 가장 좋아하는 음식만큼 사랑한다는 게. 그럼 쌤도 타인하고의 관계에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결정한 적 있어요?

소현: 음… 그치. 한 번은 친구랑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느닷없이 오늘 나랑 손절할 생각까지 하고 날 만나러 왔다는 거야.

현우: 네.

소현: 난 너무 놀랐지. 평소에 전혀 그런 티를 안 내서 정말 생각지도 못했거든.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 나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나한테서 상처받은 몇 가지 일들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 친구 입장에서는 상처받은 게 분명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지도 못했다고 사과를 했지. 그리고 말해줘서 고맙다고도 했어.

현우: 그게 선생님 마음의 결정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소현: 내가 그날 이후로 그 친구를 내 마음속에서 지웠거든. 내가 원래는 사람을 엄청 좋아해. 그래서 웬만하면 한 번 사귄 사람을 끊어내는 걸 잘 못 해. 그리고 심지어 그 친구는 내가 개인 영화를 찍을 때 너무 기꺼이 날 도와준 친구거든. 근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그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랑 그 친구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다른 것 같은 거야. 그래서 정말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앞으로 먼저 그 친구한테 연락하지는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현우: 그래서 지금까지 연락 안 하셨어요?

소현: 응, 거의 1년 됐네.

현우: 많이 친한 친구였어요?

소현: 적어도 내 마음속에선 너무 좋아하고 너무 친한 친구였지. 그 친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우: 그 마음의 결정이 선생님한테는 힘든 결정이셨나 봐요.

소현: 그치.

현우: 역시 타인이라는 게 예측불허한 거 같아요. 특히 우정, 사랑에서는 더 어려운 거죠. 그러면 쌤도 상우처럼 마음속에서 그 친구분을 지우고 나서 오히려 더 편해지셨어요?

소현: 응.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게 사랑이라는 얘기를 했었잖아. 그래서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라고 했고. 근데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일방적인 사랑을 했구나, 라고 느꼈어. 물론 그 친구도 그 친구 나름대로 자기 방식으로 날 좋은 친구로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못 느끼겠더라고. 그래서 나도 상우처럼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 현우는 어때? 친구로 남기로 결정하고 마음이 편해졌어?

현우: 네.

소현: 아닌데, 미련 있어 보이던데.

현우: 선생님은 미련 없으세요?

소현: 글쎄, 당연히 아쉬움은 있지. 내가 사랑하는 친구였으니까. 그래도 일방적이라고 느끼는 사랑을 할 것인가, 그냥 마음에서 지울 것인가를 택하자면 후자가 맞아.

현우: 어……, 나는 미련이 있나…? 저는 미련이 없습니다.

소현: 왜?

현우: 걔랑 친구로 친하게 지내던 상태랑 연인으로서의 미래를 상상해서 비교해보니까 친구인 게 훨씬 좋은 것 같아서요.

소현: 그렇구나. 그러다 언젠가 정신 차려보니 그 애랑 사귀고 있을 수도 있지.

현우: 뭐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지금의 결정에는 미련이 없어요.

소현: 대단하다.

현우: 뭐가요?

소현: 관계 결정이 빠른 게.

현우: 쌤은 결정 잘 못 하세요?

소현: 결정은 빨리 잘하는 편이지. 근데 거의 유일하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최악이 아니면 잘 끊어내지 않았어. 그래서 어릴 때부터 친구들한테 상처를 받은 경험이 많은데, 그게 타인에게 끌려다닌 꼴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심지어 그들은 나를 그렇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는데도. 그래서 아, 내 마음을 내가 결정해야 되는 거구나, 그리고 그 결정은 온전히 내 거니까, 그 다음은 타인의 마음이 어떻든 내 몫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 근데 너는 그걸 잘하는 것 같아서 대단하다고 한 거야.

현우: 쌤도 상우처럼 자발적 이별을 경험하고 성장하신 거네요.

소현: 그렇죠.

현우: 결국 우정이든 사랑이든 영원한 건 없네요.

소현: 세상에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래.

현우: 사랑도 변한다는 거죠? 아 그래도 이왕 사랑을 할 거면 영원한 사랑을 하고 싶은데… 영원한 사랑이란 게 정말 전혀 없을까요?

소현: 음… 인생에는 없겠지만 영화에는 영원한 사랑이 있지.

현우: 쌤 모든 인생이 영환데, 영화에 영원한 사랑이 있으면 우리 인생에도 있는 거 아닌가요?

소현: 나도 어떤 점에서는 있다고 생각해. 그걸 잘 표현한 영화가 있어.

현우: 뭔데요?

소현: 라라랜드 봤어?

현우: 네, 근데 둘이 헤어지잖아요. 어떻게 영원하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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