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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펭귄 Oct 30. 2022

성장통: 벌새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현우: 선생님, 저 어제 독서실에서 누가 저한테 간식 주더라고요.

소현: 오~! 뭘 줬는데?

현우: 사탕 두 개요.

소현: 너한테 버린 거 아니야?

현우: 아니에요.

소현: 주면서 뭐래?

현우: 그냥 뭐, 이거 드시면서 열심히 하래요.

소현: 몇 살인 거 같았는데?

현우: 저랑 동갑처럼 보이던데요.

소현: 좋을 때다, 좋을 때야.

현우: 십 대 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성이죠.

소현: 그래, 내가 십 대 때 못 해 봤던 거네.

현우: 선생님도 그런 경험 있으세요?

소현: 나도 있어! 왜, 없을 것 같아?

현우: 왜 화를 내세요…. 그러니까 더 없으신 것 같잖아요.

소현: 있어, 나도. 아주 오래전이지만…. 참 재밌는 것 같아.

현우: 뭐가요?

소현: 전혀 모르던 사람이랑 서로 알게 되는 거잖아. 그런 게 되게 신기하지 않아?

현우: 선생님이 경험이 없어서 신기한 거 아니에요?

소현: 조용히 하고.

현우: 네.

소현: 어떻게 보면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존재가 다 새롭게 알게 되는 거잖아. 부모님도 태어나면 처음 만나게 되는 거고, 모든 관계가 그렇지. 우리가 오늘 얘기하기로 했던‘벌새’에서도 세계와 인간과 그 신비로운 관계에 대해 다루잖아.

현우: 그쵸.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서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갈등하잖아요.

소현: 우리가 흐름대로 살면서 그냥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 이를테면 해마다 바뀌는 반 친구들 같은.

현우: 네.

소현: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거든. 이 우주, 지구, 대한민국에서 스무 명 정도가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1년이 주어진다는 게 대단한 인연인 것 같지 않아?

현우: 게다가 저는 고등학교 3년을 같은 애들이랑 지내니까 더 대단한 거죠.

소현: 그치. 근데 우리가 그렇게 인식하면서 생활하고 소중히 다루지 않아.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익숙하니까. ‘벌새’에서는 그런 당연해 보이는 일상 속에 관계하는 인물들을 모두 소중하게 다뤘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먹먹하고 또 따뜻했어. 넌 어땠어?

현우: 되게 슬펐죠.

소현: 뭐가?

현우: 주인공 은희가 수만 번의 날갯짓을 해야 날 수 있는 벌새처럼, 살기 위해 벌새와 같이 날갯짓을 하는 게 안쓰러웠어요.

소현: 난 그 날갯짓이 모두 은희가 세계와 관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하는 거라고 봤어. 어떤 날갯짓이 가장 안쓰러웠어?

현우: 친구 지숙이랑 싸우는 거요. 그리고 처음으로 가족들한테 자기 성격 안 나쁘다면서 소리치고 화낸 거요.

소현: 지숙이랑 싸운 건 왜 안쓰러웠어?

현우: 가장 친한 친군데 증오하는 존재가 된 게 안쓰럽죠. 물론 가족 간의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있고, 남자 친구랑도 사이가 틀어지고 그런 것들이 있지만, 가장 가깝게 소통했던 친구마저 멀어진다는 게 안쓰러웠어요.

소현: 나도 공감해. 그리고 다시 화해하고도 지숙이가 이런 말을 하잖아. ‘너 그거 알아? 너 가끔 네 생각만 한다.’라고. 결국 화해를 했지만, 완전히 한 사람인 것처럼 소통할 수 없다는 게 인간관계인 것 같아.

현우: 맞아요. 영화에서 인간관계로 갈등하는 인물이 은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은희 부모님도 그렇고 영화에 나오는 어른들도 갈등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어른들도 은희나 지숙이처럼 성숙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아이들 같았어요.

소현: 그러면 성숙하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현우: 음… 제대로 소통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소현: 제대로 소통하려면 뭐가 가장 중요한데?

현우: 서로의 마음을 아는 거요. 은희가 가족들한테 처음으로 화냈던 것도, 결국 은희가 얼마나 마음 상태가 피폐 해진지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그저 성격이 더러워서 한문 학원에서 쫓겨났다고 부모님이 비난해서잖아요.

소현: 그치. 너무 억울하고 화나고 슬픈 장면이었지.

현우: 그러니까 제대로 소통하려면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든 아이들이든 내면의 마음을 아는 게 중요한 거죠.

소현: 그러면 왜 우리는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서툰 걸까?

현우: 인간은 항상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 방법 중에 인간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게 먼저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소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려고 하고, 그 방법으로 타인과 소통하니까. 소통을 위한 소통이 아니라는 뜻이지?

현우: 네. 인간은 충분히 스스로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데 타인을 통해서만 존재를 증명하려는 게 미성숙한 것 같아요.

소현: 이미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인식하려고 하는 거지. 그래서 은희도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서툰 거고. 그러다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거야.

현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소현: 네 말대로 인간은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고 그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을 하잖아. 그랬을 때 자신이 증명되는 건 타인이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거야. 자기 존재가 이미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 증명할 필요가 없어. 근데 우리는 그걸 잘 모르고, 그래서 소통하려고 하는데, 불통이 될 때 상처가 되는 거지.

현우: 저는 그 불통이 자신을 찾아주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상처를 받고 고통을 느끼면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잖아요. 근데 그게 타인한테서 원인이 찾아지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찾다 찾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소현: 그래서 은희도 비로소 자신을 보게 돼.

현우: 어느 장면에서요?

소현: 은희가 영지 선생님한테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잖아. 그렇게 내가 되게 별로인 사람 같다고 느끼면서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는 거지. 네 말대로 결국에는 그 인간관계에서의 상처가 나를 인식하게 하는 거야.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처로 인해서 성장하게 돼. 비로소 나를 보게 되니까.

현우: 그러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여야겠네요. 그 과정 속에서 고통이 있어도 성장통이 된다는 뜻이니까요.

소현: 맞아.

현우: 선생님 그려면 은희가 혼자 춤추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이 은희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성장통을 겪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소현: 그치.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떤 감정인지 알아차리고 나를 보게 되는 게 성장통인 거니까. 그 장면이 지완이가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은희가 어차피 너 좋아한 적 없다고 말한 바로 다음 장면이잖아.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동시에 자신에게도 상처를 줬던 거지. 자신을 마주하고 괴로움을 표현한 장면인 것 같아.

현우: 네. 은희의 감정이 전달돼서 연출이 잘 된 장면이라고 느꼈어요.

소현:  결국 ‘벌새’는 은희의 성장을 통해서 우리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다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영화야.

현우: 맞아요. 마지막 장면도 그걸 말해주는 것 같아요. 대중 속에 속해 있으면서도 두 발로 서 있는 은희를 보여주잖아요. 그 장면을 통해서 은희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소현: 관계에서 사랑을 원하고 자신이 증명되길 바랐던 은희가 관계들에 속해 있으면서도 혼자 서게 된 걸 우리가 본 거지.

현우: 선생님 그럼 결국 성숙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신을 먼저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어야 되는 거네요.

소현: 맞아.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불완전을 주제로 얘기했던 걸 아우를 수 있는 거야.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는 게 아프지만 성장하게 되는 거고, 그렇게 세상과 성숙하게 소통하게 되는 거지.

현우: 그럼 불완전은 나약함을 뜻하는 게 아니네요. 오히려 그걸 인정하는 게 단단해지는 거고요.

소현: 많이 컸네, 현우.

현우: 저 180… 되고 싶네요. 쌤 그럼 궁금한 게 있는데요.

소현: 뭔데?

현우: 쌤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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