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소현: 현우야, 왜 ‘가위손’에 공감됐다는 거야? 설마 에드워드처럼 네가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걸 나한테 말하고 싶은 거야?
현우: 그럴 리가요. 당연히 아니죠.
소현: 그럼?
현우: 저도 모르게 공감이 되더라고요….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슬펐어요.
소현: 그래.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난 널 수단으로 사용한 적 없다는 걸 알아두렴.
현우: 쌤, 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소현: 아니 나도, 괜히 공감이 돼서 그렇지.
현우: 어느 부분이요?
소현: 가위손을 데려온 엄마한테 공감됐지. 그 엄마도 에드워드를 생각해서 보살펴 주려고 마을 아래로 데리고 온 건데, 결과적으로는 에드워드가 이용된 걸로 보이니까.
현우: 왜 공감이 됐는데요?
소현: 네가 에드워드에 공감이 됐다며. 그 엄마의 의도 중에 에드워드를 이용할 의도가 전혀 없잖아! 나도 그렇다니까? 혹시 너도 에드워드처럼 상처받았니? 아니라고 말해.
현우: 쌤 무서워요….
소현: 너 나 안 무서워하잖아. 완전 친구구만 뭘 무서워.
현우: 그쵸, 뭐. 하나밖에 없는 친구죠.
소현: 어떻게, 우정 팔찌라도 할까?
현우: 어떻게 쌤이랑 친구를 합니까~! 다 농담이죠. 선생님 그래서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소현: 이번 영화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걸 얘기해 보기로 했잖아. 이 영화는 비유가 매우 명확해서 마을 사람들이 에드워드를 이용한다는 건 잘 보여. 근데 인간은 대체 왜 타인을 수단 삼는 건지, 이 영화에서 그걸 찾아보려고 했는데 잘 모르겠더라.
현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소현: 그럼 오늘 그걸 얘기하면서 같이 찾아보자. 일단 왜 에드워드를 마을 사람들이 수단으로 삼았는가를 생각해보면, 에드워드를 완전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현우: 손에 가위가 있기 때문에 사람처럼 보지 않았다는 건가요?
소현: 그치. 에드워드의 가위손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어. 에드워드가 병에 걸렸다거나 장애를 가졌다거나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식의 말을 하잖아. 정작 에드워드는 자기의 가위손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야. 넌 왜 사람들이 에드워드를 수단으로 삼았다고 생각해?
현우: 저도 비슷한 거 같아요. 우선 에드워드는 겉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잖아요. 어둡고 무섭기까지 해서 마을 사람들한테 낯설게 다가왔겠죠. 그래서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요.
소현: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에드워드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물론 결국에 에드워드가 원래 있던 마을 꼭대기 성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현우: 쌤, 혹시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아세요? 선생님이 지금 말씀하신 거 들으니까 생각나요.
소현: 고슴도치 딜레마? 그게 뭔데?
현우: 그게 인간관계를 고슴도치에 비유한 거거든요. 한겨울에 고슴도치 두 마리가 추운 밖에 있는데, 생존하려면 서로 붙어서 체온을 유지해야 돼요. 하지만 서로 붙으면 등에 있는 가시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어요. 이게 고슴도치 딜레마에요.
소현: 생존을 하려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어서 딜레마라는 거네. 근데 그게 ‘가위손’이랑 무슨 상관이야?
현우: 마을 사람들이 에드워드를 이용한 게 마냥 나쁜 거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소현: 왜?
현우: 고슴도치 딜레마에 제 상상력을 더해서 이야기를 덧붙여보면, 추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왔어요. 그러면 붙어 있던 고슴도치는 아마 떨어지겠죠?
소현: 그렇겠지.
현우: 그럼 선생님은 먼저 다가간 고슴도치를 보고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이타적인 거라고 생각하세요?
소현: 당연히 이기적인 거겠지. 필요에 의해서 옆으로 갔다가 필요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린 거니까.
현우: 사람들은 봄이 돼서 떨어진 고슴도치를 보고 다른 고슴도치를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볼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공생했다고 보거든요.
소현: 음, 공생의 관점에서 보면 ‘로제타’랑 비슷하겠네.
현우: 그쵸. 고슴도치는 생존을 위해서 붙은 거잖아요. 그리고 봄이 왔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주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으니까 떨어진 거죠. 그러니까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았으니까요.
소현: 맞아. 감독도 마을 사람들을 마냥 나쁘게 그리지 않은 게 분명한 것 같아. 어쨌든 에드워드한테 호의적인 관심도 많이 보이고 에드워드 재능을 높이 사서 응원해주기도 하니까. 다만 마을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믿었던 거지. 처음엔 경계하다가, 가위손의 좋은 재능을 이용했다가, 또 처음처럼 경계해버린 거야.
현우: 네. 에드워드가 겉모습은 무서워도 내면에 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내면을 보지 못한 거죠.
소현: 그게 보이는 것만 믿어서인 거지.
현우: 가장 적절한 장면이 그 장면인 것 같아요. 에드워드가 케빈이 차에 치일 위기에서 구해주는데, 사람들은 에드워드가 케빈을 해치고 있다고 보잖아요.
소현: 그래서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없는 거야. 에드워드는 분명 온전히 선한 의도로 행했던 건데, 그걸 보는 마을 사람들은 에드워드를 악마 취급하니까. 같은 현상을 놓고 선과 악이 맞닿아서 공존하는 거지. 에드워드가 구해준 케빈에게는 선이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악인 것처럼.
현우: 그 사건을 기점으로 에드워드가 떠나게 됐죠. 진짜 슬픈 거죠.
소현: 근데 고슴도치 딜레마 비유를 대입해봤을 때, 그게 슬픈 게 아닐 수도 있지. 오히려 옳은 판단일 수도 있는 거야. 왜냐하면 고슴도치가 더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것처럼, 에드워드도 마을 사람들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거니까 마을을 떠난 건 슬픈 게 아닐 수도 있어.
현우: 제가 말한 고슴도치 비유는 고슴도치 대 고슴도치 구도잖아요. ‘가위손’은 1대 다수의 구도이고요.
소현: 마을 공동체를 1로 볼 수 있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 전체가 에드워드랑 대비가 되잖아. 다들 알록달록하고 비슷한 구조를 가진 집에 살고 있고, 옷도 화려한 유채색으로 차려입잖아. 반대로 에드워드의 성은 을씨년스럽고 어두컴컴하고 거의 무채색을 띠고 있지. 에드워드 옷도 완전히 검은색이고.
현우: 1대 1 구도로 볼 수 있겠네요.
소현: 응. 그래서 서로 가까워질수록 상처가 되기 때문에 에드워드가 떠난 거겠지.
현우: 네. 서로 붙어 있을 때 나는 상처는 어느 순간 적응이 되잖아요. 하지만 상처가 계속 깊어지는 건 변함이 없는 거죠.
소현: 그래서 에드워드가 마을 사람들을 떠나기로 한 것도 결국 서로를 위해 옳은 선택이었을 수 있는 거지. 그 이별이 상대를 상처 내지 않기 위한 존중의 이별이었던 거야.
현우: 그쵸. 애드워드가 마을에 오래 남아있을수록 서로 상처가 됐을 테니까요.
소현: 그러면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이유를 찾았네. 처음부터 그런 이유는 없는 거지. 표면적으로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서로를 위한 거였으니까.
현우: 그럼 이별도 공생을 위한 선택일 수 있네요.
소현: 응.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한다는 말이 에드워드한테도 적용되는 거지. 영화 엔딩에서 몇십 년이 지났어도 에드워드가 여전히 마을을 향해서 눈을 뿌려주는 걸 봐도 그렇고, 킴이 자기 손녀딸한테 에드워드의 얘길 해주는 걸 봐도 그렇지.
현우: 저희가 해답을 찾았네요.
소현: 겉모습만 보고 보이는 대로 믿는 걸 경계하자.
현우: 근데요 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다 타인과 공존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근데 이렇게 얘기를 해 봐도 실제로 적용되지도 않고 이걸 적용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다 부질없는 거 같아요. 결국 인간관계는 갈등이잖아요.
소현: 갈등을 피할 수는 없지. 그래도 부질없다는 거에서 끝나면 허무하기만 한데, 갈등에 매몰됐다는 걸 관찰하면 좀 달라져. 그래서 보이는 대로 믿지 말자는 거지.
현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소현: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필연적인 것 같잖아. 넌 그래서 인간관계가 부질없다고 하는 거고.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에만 집중하면 거기에 매몰될 수밖에 없어. 근데 그건 보이는 대로 믿는 것과 같은 거야. 거기서 내가 갈등에 처해 있구나, 하고 관찰하면 달라진다는 거지.
현우: 그럼 쌤은 저희가 이렇게 한 말들을 가지고 인간관계에서 실천할 수 있나요?
소현: 나는 실제로 경험을 해 봤어. 실천한다고 갈등이 없어지는 건 절대 아니지. 애초에 갈등을 없애려고 실천하는 게 아니기도 하고.
현우: 갈등을 없애려고 실천하는 거 아닌가요?
소현: 그건 내 영역 밖이야.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면 갈등은 무조건 있을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그 영역은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그런데 그 갈등을 대하는 방식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어.
현우: 그냥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는 거 아닌가요?
소현: 아니야. 갈등이 있을 때 한 발 떨어져서 내가 지금 갈등에 처해 있구나, 하고 관찰하고 인식하기만 하면 돼. 해석할 필요 없이. 다음 주에 이 얘기를 해보면 되겠다. ‘디태치먼트’를 보고 오자.
현우: 무슨 내용인데요?
소현: 네가 나한테 실천해본 적 있냐고 물어봤잖아. ‘디태치먼트’도 학교 얘기고, 선생님이 주인공이야. 그 주인공이 갈등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줘. 그 방식이 내가 방금 말한 것과 유사해.
현우: 네. 그럼 다음 주에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