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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펭귄 Oct 30. 2022

공생에 관한 아이러니: 로제타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소현: ‘로제타’를 보면 우리가 ‘위플래쉬’에서 한 얘기가 다 부질없게 느껴져. 기본적인 생활에 안정성이 없으면 인정욕구고 존중이고 간에 다 사치 같은 거지.

현우: 왜요?

소현: 로제타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뭐인 것 같아?

현우: 일자리죠. 생활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니까요.

소현: 맞아. 그리고 일자리라는 건 로제타한테 단순히 돈벌이 창구를 넘어 하나의 상징이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상징.

현우: 트레일러에서 사는 게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가요?

소현: 그건 내 생각이 아니고, 로제타가 영화 속에서 직접 한 대사잖아. 일자리를 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일자리를 구했다, 나는 정상적인 삶을 산다.’라고 하잖아.

현우: 그러면 로제타의 행동은 이기적인 걸 수도 있겠네요.

소현: 무슨 말이지?

현우: 생존 때문에 친구의 일자리를 뺏은 게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서 친구의 일자리를 뺏은 거잖아요.

소현: 정상적인 삶을 살겠다는 게 일종의 욕심이라는 거네? 자기만족이라는 건 어떠한 욕심이 충족되는 걸 뜻하는 거니까.

현우: 맞죠. 근데 제가 이기적이라고 한 이유는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남의 걸 빼앗는 행위가 옳지 않기 때문이죠. 스스로의 힘으로 욕심을 충족시키는 게 맞는데, 마치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상대 후보를 암살하는 것과 같은 거 아닐까요?

소현: 일단 남의 일자리를 빼앗은 건 결코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지. 하지만 생존 때문에 일자리를 뺏은 게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거였다는 주장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어. 왜냐하면 로제타한테 있어서 그 정상적인 삶이라는 범주가 기본적인 생존의 수준이었으니까.

현우: 정상적인 삶하고 기본적인 생존이라는 게 같은 범주에 속할 수가 있을까요? 로제타가 기본적으로 물을 못 마시거나 밥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그건 또 싫다고 하잖아요.

소현: 트레일러에서 살면서 관리인이 수도를 끊어서 사용하지 못하기도 했고, 로제타가 관리인 몰래 물고기를 잡기도 했잖아. 그렇다면 기본적인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건 충분히 보이는 것 같아. 다만 아르바이트를 거절하고 곧 죽어도 일정한 일자리여야 한다는 건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지.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당장 아쉬운 대로 돈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로제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

현우: 가치관과 생존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예요? 생존은 살아 있다는 뜻인데, 로제타가 당장 일자리를 못 구한다 해도 살아 있을 순 있잖아요.

소현: 가치관이란 게 그런 거잖아. 사람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 로제타한테 생존은 로제타만의 삶을 사는 거고, 그게 곧 로제타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어. 네 말대로 생존이 살아 있다는 뜻이라면, 로제타한테 일정한 일자리가 없다는 건 죽어 있는 거나 다름없는 거야. 물론 모든 일자리가 완벽하게 지속될 수 없는 건 로제타도 알 거야. 그런데도 당장 돈을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고 오직 일자리를 구한다는 걸 보면 알 수 있어. 단지 숨만 쉬고 물 마시고 배곯지 않으면 생존할 수 있다는 건, 아무 생의 의지 없이 사는 그림자 같은 인생이라고 느껴지겠지. 그래서 로제타는 자기 자신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원하는 거야.

현우: 무슨 말이에요? 로제타가 왜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한테 억압받고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소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삶이 아닌 엄마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살고 있잖아. 아마 로제타가 엄마를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러면 엄마의 삶도 자기 삶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테니까. 근데 엄마는 그런 로제타를 밀어서 저수지로 빠뜨리는 존재야. 그걸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지. 로제타가 저수지에 빠져서 아래는 온통 진흙이라고 나갈 수가 없다고 아무리 엄마를 외쳐 불러도 엄마는 오지 않잖아. 그게 바로 로제타가 엄마의 삶도 짊어지며 사는 현실인 거지.

현우: 그러면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저수지에 빠진 로제타의 모습을 현재 로제타의 모습으로요. 어떻게든 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잖아요. 

소현: 그렇지. 또 지푸라기를 잡고 어떻게든 물 밖으로 나오는 걸 친구의 일자리를 뺏어서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비유로 볼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로제타가 아까 얘기한 일자리 구했다는 대사 앞에‘내 이름은 로제타.’라고 말하잖아. 왜 굳이 로제타라는 이름을 스스로 되뇌었는지 생각해보면, 단순히 생존이 목표가 아니라 인간 로제타의 삶을 지키고 거기서 가치를 느끼고 싶었던 거라고 볼 수 있어.

현우: 네. 이제 로제타의 가치관이 왜 생존과 연관되는지는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자기 가치관이 뭐가 됐든, 남의 일자리를 뺏는 건 도덕적으로 잘못된 거 아닌가요?

소현: 그건 네 말이 맞지. 하지만 우리가 마냥 로제타를 나쁘게만 볼 수 없잖아. 그렇다고 선하다고 볼 수도 없지만. 로제타한테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이 되니까 못된 짓을 했어도 연민을 느끼는 거지.

현우: 저는 오히려 못된 짓을 했기 때문에 연민이 생겼던 것 같아요. 저렇게까지 해서 일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나? 싶어서요.

소현: 그러면 조금 다른 연민이네.

현우: 네. 로제타가 불쌍하다고 나쁜 짓을 한 게 이해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친구를 버리면서까지 일자리를 꿰차려는 모습에서 불쌍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현: 그럼 그건 로제타한테 공감한 건 아닌 거네?

현우: 네. 저는 지극히 이타주의적이라 이해가 힘들죠.

소현: 만약에 네가 로제타 친구라고 했을 때, 로제타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현우: 뺏긴 거니까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소현: 그러면 영화에서 그 친구는 왜 로제타한테 증오를 표현하면서도 결국 로제타를 도와주는 걸까?

현우: 그 친구는 로제타가 공감됐기 때문이겠죠.

소현: 네 말대로 로제타가 일자리를 뺏은 거니까 괘씸할 법한데 결국엔 넘어진 로제타를 일으켜 세워주잖아. 영화의 엔딩 장면을 그렇게 정한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난 그게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 의도였다고 생각해. 결국 인간은 공생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지.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그 공생을 이해하려면, 공감이 필요한 거야. 네가 왜 로제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건지 알겠지만 결국에 서로 돕고 살아가는 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 비로소 가능한 거거든.

현우: 그러면 공생하려면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건가요?

소현: 그치.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공생을 위한 전제인 거지. 로제타의 행동이 분명 나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또 한 편 모든 인간에게 존엄성이 있으니까, 로제타는 스스로 그걸 지키려고 애쓴 거고 친구도 그걸 이해하고 공감했던 거야. 존엄성 하니까 생각나는데 현우는 ‘로제타’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어?

현우: 로제타가 계속 무언가를 힘들게 드는 장면들이요. 마지막에 가스통을 힘들게 옮기는 것도 그렇고, 밀가루 포대를 옮기는 거나 술 취한 엄마를 옮기는 장면들이 로제타가 짊어지기 어려운 걸 보여준다고 느껴졌어요. 선생님은요? 어떤 장면에서 존엄성이 생각나셨어요?

소현: 엔딩 시퀀스에서 로제타가 무거운 가스통을 들고 옮기는 이유가 죽으려고 했기 때문이잖아. 트레일러에서 가스를 틀어 놓고 창문 틈을 다 막아서 죽으려고 하지. 근데 가스가 다 떨어져서 죽으려다 말고 관리인한테 가서 빈 가스통을 반납하고 새 가스통을 사 오잖아. 죽으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고 마음대로 죽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 너무 비참할 것 같았어. 자기 존엄성을 지키려고 발악하던 로제타가 그걸 내려놓은 순간인데, 아이러니하게 그조차 맘대로 되지 않는 거지.

현우: 슬프네요.

소현: 그래도 가스통을 옮기다 말고 쓰러져 우는 로제타를 친구가 일으켜줘서 다행이었지.

현우: 쓰러진 엄마를 일으켜주는 것도 로제타잖아요. 정말 서로 공생인 거네요. 

소현: 맞아. 공생하려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또 그게 마냥 쉽지만은 않아. 현우가 나한테 맞먹으려고 할 때 나도 이해가 안 되기도 하거든. 그리고 난 너를 도와주는 게 명백한데 넌 날 뭘 도와주고 있지? 너만 공생 아니야?

현우: 와, 저 진짜 서운한데요. 맨날 잡일은 다 저 시키시잖아요….

소현: 잡일 뭐?

현우: 학교 행사 촬영 다 제가 하잖아요.

소현: 현우야, 잡일이라니. 얼마나 훌륭한 일이야. 그리고 그건 네가 방과 후 수업료로 시키는 일 다 하기로 해서 하는 거잖아.

현우: 제가요? 그런 적 없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강제로 그렇게 된 거죠…….

소현: 그것도 다 너한테 도움이 되는 거야~!

현우: 저 촬영 전공할 것도 아닌데요.

소현: 올 라운더가 돼야지. 다 널 위한 거지.

현우: 선생님 저 깨달았습니다.

소현: 뭘?

현우: 공생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뭔지요.

소현: 뭔데?

현우: 공생을 위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타인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돼요.

소현: 지금 내가 널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거지? 오해야, 오해. 그리고 네가 그렇게 열심히 촬영하고 하니까 선생님들도 얼마나 기특하게 여기시니. 진짜 다 널 위한 거라니까?

현우: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아니라 로제타 얘기한 거예요. 로제타가 친구를 수단으로 자신의 일자리를 얻었잖아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소현: 그래. 공생이 맞는 걸로.

현우: 쌤 그러면 다음 주에 ‘가위손’으로 얘기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에드워드를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잖아요.

소현: 그래, 그럼 다음 주에는 ‘가위손’으로 얘기해 보자.

현우: 꼭 다시 보고 오셔야 돼요…! 저는 에드워드한테 정말 많이 공감이 되거든요.

소현: 알겠어~!

현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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