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인과 아나운서 Nov 18. 2023

또 만나! 가을. 어뜨무러차! 겨울.

스산하다.
자몽하다.
춥다.

어느새 가을인가 싶었는데, 어느덧 겨울다.
가로수들이 잎새를 거의 떨구어 헐벗은 나목들이 즐비하다.

낮의 햇볕에서도, 밤의 달빛에서도 손톱만큼의 온기만 남아 으슬으슬 떨기 일쑤다.

달보드레한 가을의 순도! 

'제대로의 만끽'은 엄두조차 못 내고 계절은 순식간에 겹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낙화의 시인 이형기 님은 가을의 종장(終章)쯤에서 그렇게 탄복했다.

'떠날 때에 미련 없이 털어내는' 비움의 진리를 깨닫기도 전에,
가을은 겨울 속으로 잠영할 채비를 마친다.

가을 내내 우리가 빚어낸 '기도의 언어'들은 얼마나 간곡했던가.
얼마나 새틋했던가.

가을의 결말 속에 겨울의 발단이 꿈틀댄다.

한 없는 깊이의 사색과 뭉클한 철학을 선사한 가을의 갈무리는 늘 애련하다.
잇대어 시린 겨울은 오고야 만다.

세월이 형상 없이 누적되듯 가을도 그렇게 쌓여 가리니.
마지막 잎새가 남기는 헛헛함에 이젠 더 이상 애석해하지 않으리라.

다시 돌아올 '훗날의 가을'에 더 푸근해질 삶의 저녁을 고대하며,
찬바람 감도는 석양으로부터 전해오는 겨울빛을 온 마음으로 보듬는다.

" 만나! 가을.
어뜨무러차! 겨울."




*[덧]

- 자몽하다: 졸린 것처럼 정신이 흐릿한 상태.

- 어뜨무러차: 감탄사 / 어린아이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내는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