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젖히면 하나가 가로막는다
"라이벌은 나 자신이었어요."
거짓말이기도 하고 참말이기도 하다.
강을 둘러싸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어원처럼, 마오와 연아는 얼어붙은 물 위를 스치는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그들은 아니라고, 나를 이기는 것이 먼저였다고 이구동성.
그들의 라이벌은 바다 건너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차가운 빙판 위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강을 지나 산을 넘고 들을 가로지르는 선수의 라이벌은 生과 死를 오가며 바뀐다.
하나를 젖히면 하나가 가로막는다.
Lance Armstrong은 팔보다 허벅지가 강했다. 어린 시절 계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며 시작한 스포츠의 세계.
그는 1990년대 중반 사이클 세계 최고 정상급 선수였지만 스물다섯 나이에 암 선고를 받는다.
암 치료를 받는 중 자전거를 타다가 산악자전거를 타는 50대 중반의 여성에게 추월을 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그녀는 숨도 몰아 쉬지 않고 느긋하게 달리고 있었는데...
이제 자기 자신이라는 새로운 라이벌이 생겼다. 암 진단을 받고 18개월 만에 그는 경기에 복귀를 선언했고 3년 만인 1999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으며 2005년까지 7연승을 기록하고 사이클의 황제로 즉위했다.
황제가 견딘 혹독한 인생을 보며 감탄밖에 못하는 아줌마에게도 라이벌이 있다.
"왜 자전거를 타니?"
"자전거 타니 뭐가 좋니?"
물어보는 이가 상상 못 할 내 라이벌.
가장 착한 라이벌,
자전거를 타지 않을 이유들이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자전거를 타다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의 의도는 순수하게도 나에 대한 염려라고 믿으며 말로 상대하지 않는 것이 이 라이벌을 대할 태도다.
가장 흔한 라이벌,
경쟁하지 않는데 목숨 걸고 달려드는 아저씨들이다.
자전거 길을 가요무대 삼아 뽕짝을 사방에 뿌리며 유유자적 자전거를 탄다. 뒤에서 듣기 싫어 속도를 내어 앞지르면 여자에게 추월당했다고 본인의 무릎 관절 상태 무시하고 질주하며 지나간다. 뭣이 중한지 모르는 라이더들이라 라이벌로 부르기도 싫다.
가장 강한 라이벌은 바람이다.
그는 실체가 있는데 보이지 않고 느껴지는데 뭔지 모르는 예측불가 라이벌이다.
사정없이 밀어내는데 싸울 수 없는 적수다.
나는 그에게 백전백패다.
산뜻한 아침 공기를 뚫고 동쪽으로 달린다.
팔당대교 바라보며 흐르는 물결 즐기다가 서쪽 하늘로 오후 햇살이 찬란해지면 집에 돌아가려 자전거에 올라탄다.
맛난 국수로 점심도 든든히 먹었고 고개도 잘 넘었으니 이제 달려주면 되는데 다리에 영 힘이 붙지 않는다.
서해바다가 지는 해를 받으려 바람을 올린다. 썰물을 육지로 보내고 바람을 강으로 날려 보낸다.
자전거 위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안고 허벅지를 들어 올리려 힘을 다한다.
휴일 저녁 산책 나온 한강 공원의 사람들은 한가로운데 나는 혼자 바람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느라 써버린 체력은 바람을 맞아 마지막 불꽃을 태우느라 땀을 쥐어짜고 가슴은 산소를 공급하느라 가열차게 펌프질을 한다.
난 언제나 바람에게 진다.
완주만 해도 감사하다.
"아! 난 언덕보다 바람이 더 무서워."
두 바퀴로 넘다 9회 끝
다음화 #10 복면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