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복면 여왕

자전거에 오르면 카니발은 필요 없다

by 은륜


"너 그거 쓰고 나한테 아는 척하지 마."


친구가 마스트를 쓰고 나에게 얼굴을 들이댄다. 눈구멍 둘, 코 구멍 하나 뚫려있는 복면이 보기 싫어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열심히 걷던 그녀는 갈등했단다.


"살이냐 피부냐."


내 몸 위해 보태준 것도 없는 남들의 시선쯤 무시하겠다는 그녀의 당찬 선택.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살 빼면 안 돼?"


보기 싫다고 짜증내는 나쁜 친구 역할이 내 몫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친구의 산책용 마스크는 애교였다는 거, 나는 구멍도 없는 복면을 쓰고 활개 치고 달려갈 거라는 거.


자전거 타는 아줌마에게 복면은 필수다.

자외선보다 훨씬 무서운 벌레들과 먼지들을 차단해 준다. 한때 안면몰수 복면이 안구 폭력이라 여겼던 나, 이제 다양한 색의 복면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나서 안 하고 못했던 많은 일에 몸을 쓰고 산다.

정말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이른 봄에 달리면 땀보다 콧물이 복면을 적신다. 가다 쉬다 코를 풀고 복면이 젖으면 얼굴이 얼어버릴까 복면을 갈아준다.

차가운 공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콧물을 날리며 맹구처럼 달릴 수는 없으니 복면을 더 잘 챙긴다.

엉덩이 통증을 막아주는 패드 속바지만큼이나 복면은 나에게 소중하다.


금욕의 사십 일이 두려워 미리 당겨 일탈하던 謝肉祭(Carnival)에도 복면은 첫 번째 준비물이었다. 겨우 고기 먹는 일을 피해 놀아나는 일상탈출이 시작이었으니 인간의 축제 속 복면은 허망하다. 쾌락의 열기가 식으면 자신을 감췄던 덮개는 부서져 버렸으리라.


자전거에 오르면 카니발은 필요 없다.

복면이 주는 자유가 달려가는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감추고 덮으려는 나보다 지키고 극복하려는 내가 소중하기에 복면을 쓴다. 자전거 위에서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온 몸의 열기는 느껴진다. 가는 두 바퀴 사이에서 중력을 견디며 균형을 유지하는 몸 전체가 복면 속 얼굴보다 정직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양쪽이 터져있는 작은 자루 모양의 복면을 정수리부터 뒤집어쓰고 끌어내린다. 눈밑에서 목까지 덮어쓰고 고글과 헬멧을 쓴 나는 아이언맨이 된 기분이다. 지구를 구할 일이 없으니 다행이지만 갱년기에서 아줌마 한 명은 구할 능력은 갖고 있다.


그 아줌마는 춘천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자전거로 몇 번 횡단하더니 남한강 따라 충주호도 접수했다.


"하늘이 내 이불이야."


충주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 나무 그늘에 누워 꿀맛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흐르는 땀을 핥아주는 바람이 겁 없이 달려온 길에서 받는 선물이다. 플라타너스는 연두색 잎사귀로 박수를 보내며 반짝거린다. 멀리서 물새는 가는 몸 통을 울려 찬양을 한다.


살아있어 빛나는 모든 것들이 반겨주는 속을 뚫고 간다.


복면은 달리는 나를 여왕으로 만든다.


어디든 내가 차지할 길로 만들고 언제나 균형을 잡고 중력을 이기는 몸으로 만들어준다. 표정을 애써 짓고 감정을 감출 필요도 없다. 진심으로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미모 따위 아무 소용없다.


달리는 나를 찍은 사진을 보며 남편이 아부한다.


"와우! 당신 여신 같아."


두 바퀴로 넘다 10회 끝

다음화 #11 부러진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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