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로 살다 婦人으로 살아가는 일은 운전처럼 쉽지 않았다
"아줌마, 잘 하네요. 하루만 해도 되겠네."
운전연수 첫날, 강사는 나에게 자동차 전용도로를 시속 80km로 달리게 했다.
40만 원에 중고 프라이드를 사서 결혼 일 년 만에 오너드라이버가 되었다.
"왜 결혼은 기어 변속을 위해 손과 발이 장단을 맞추듯 편안하지 않을까?"
연수 마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어느날, 칼로 물을 베고 답답한 마음에 뛰쳐나가 한 겨울밤의 텅 빈 도시를 무한질주했다. 신호등 위 빨간 불 빛에 갑자기 정신이 차리고 급정거를 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다시는 이렇게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혼이라는 현실에 정면으로 마주하자고 다짐했다.
딸로 살다 婦人으로 살아가는 일은 운전처럼 쉽지 않았다.
언덕을 올라가며 시동을 꺼뜨리는 초보처럼 아내로 엄마로 넘어야 하는 고개가 끊임없이 계속되니 마음을 잡지 못한 초보 부인은 결혼이 버겁기만 했다.
어렸을 때 愛馬婦人이라는 성인용 영화 포스터를 보며,
"저 부인은 말을 타고 바다로 도망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왜 그 이상한 표정을 오해했을까?
풀리지 않은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쉬운 문제부터 하나씩 정답을 적어가며 매일을 살아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婦人이 되었다.
네 바퀴의 애마는 그 사이에 오토매틱으로, 배기량 2000cc로 바뀌었다.
낯선 나라에서도 국경을 넘나드는 愛馬婦人이 되었다. 옆자리에 夫君을 모시고 뒷자리에 공주님들을 모시고 수많은 길을 달렸다.
세상은 넓은데 탈출은 불가능했다.
불혹의 나이도 끝나갈 즈음 GIANT의 ESCAPE자전거를 샀다.
삼천리 자전거밖에 몰랐던 시간이 훌쩍 가버렸고, 내 앞에 세련된 디자인의 검은 프레임 위에 단단하게 새겨져 있는 그 이름이 보였다. 나에게 딱 맞는 두 바퀴의 애마였다.
아직 차가운 봄바람을 맞으며, 첫날 한강에서 몸을 맞췄다. 궁합이 딱 맞았다.
네 발로 달리던 애마들과는 비교불가다. 오로지 내 힘만이 그를 이끌고 내가 일으키고 잡아주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무력한 馬. 안락한 쿠션도 없으며 에어컨도 없고 비도 바람도 가려주지 않는 날 것의 馬. 나의 무능한 운전에 속절없이 넘어져버리고 갑자기 브레이크라도 밟으면 나를 내동댕이 쳐버리는 野生馬.
길들여지지 않는 愛馬가 나를 길들였다.
두 바퀴로 더 멀리 가면 갈수록 오래 타면 탈 수록 나는 이름에 맞는 婦人이 되었다.
우리는 함께 한강을 종주했고 문경새재를 넘고 남쪽 바다 끝까지 달려갔다.
나는 애마 위에서 어디든지 떠나는 몸으로 바뀌었다.
愛馬婦人은 탈출에 성공했다.
발목에 매인 사슬 따위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묶지 않았고 내가 나가지 않았을 뿐이라고, 달려간 그 길 끝에서 생각했다.
혼자 자전거로 한강을 달리면 영화[愛馬婦人]를 봤을 만한 아재들이 말을 건다.
무시하고 달려 가면서 콧방귀를 뀌어준다.
"뭐야, 애마부인 캐스팅은 가슴 사이즈와 상관없는 거였어?"
두 바퀴로 넘다 8회 끝
다음화 #9 라이벌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