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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Jun 10. 2021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선생님, 요즘은 어떠십니까 / 이오덕, 권정생

 

배운 것 없고 가난하고 병든 남자가 동화 한 편을 썼다.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했고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이 글을 쓴 그 남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열두 살 손아래 작가를 섬기며 30년 동안 우정을 나눈다. 그들의 편지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절절하다. 두 사람의 글은 아동문학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씨앗을 심는 땀으로 쓰여졌다.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의 편지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졌다.


두 사람을 닮은 네 장면의 그림조차 겸손하다.


시중에 출판되는 책들에 비하면 참 단촐한 편집이다. 그 흔한 추천사 한 줄이 없다. 오로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글과 유서 대신 남긴 권정생의 글이 전부다. 참 재미없는 책이다. 그러나 삼십 년 세월의 희노애락이 두 얼굴의 필체로 선명해서 차곡차곡 깊게 들어온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고, 양복을 입지 못하고, 장가 못가고, 친구 없고, 세끼 보리밥 먹어도 종달새처럼 노래하겠다는 사람은 이제 책이 되었다.


<강아지 똥>으로 알려진 권정생은 경북 안동에서 고독한 생을 살았다.


전쟁과 가난으로 시작된 결핵은 스무살 청년의 몸을 평생 괴롭혔다. 아플때엔 쓰러졌다가 좀 나아지면 글 앞으로 나아갔다. 가족도 없어 시골 교회의 방 한 칸에서 외롭게 글을 쓰는 이에게 친구가 생겼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모든 글을 세상에 알리려고 동분서주한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편지를 쓰며 친구의 발이 되고 입이 되었다. 그의 편지는 아동문학의 역사이며 출판계의 증거다. 한 사람의 신념과 소신이 어떤 삶으로 걸어갔는지 기록되었다. 번거롭고 지칠만도 한 일이었을텐데 참 한결같이 권정생을 섬겼다.


두 사람의 우정은 아동 문학이라는 고리로 시작되었겠지만 긴 세월 이어진 편지마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절절하다. 아픈 자를 돌보며 그의 정신을 사랑하는 이오덕의 깊이는 절제된 문장마다 오히려 향기롭다. 초등학교 선생이라는 생업에 매여있으면서도 어떻게 그 많은 일들로 전국을 누빌 수 있었을까. 다음세대를 위해 고민하고 글 앞에 진심을 담는 열정없이 한 발도 움직여지지 못할 일이다. 그  사랑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만약 외로울 때에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하며 물어보던 오래 전 노래가 있다.


눈물을 글썽이며 작은 손을 내밀던 가수는 정말 대중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 노래를 불렀을까? 권정생과 이오덕, 두 사람은 당연히 미소하며 서로의 이름을 대주었으리라.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고백한다.




 "제가 쓰고 있는 낙서 한 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 


이오덕은 단정한 필체 속에서도 가끔 격정에 휩싸여 권정생을 부른다.




"아이들에게 잔인한 훈련만을 강요하면서 아주 멋진 교육을 하는 것처럼 꾸며 보이는 일에 온 정신을 소모해야 하는 '교육 공무원'인 저 자신이 한심스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괴로울 때마다 저는 권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편안한 생활 속에서는 결코 참된 문학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생각해봅니다."


안부를 물을 때마다 절절하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는 병든 자를 걱정하느라 손 끝이 아리고 병든 자는 일하는 자가 몸이 상할까 마음이 아프다.


인생은 참 모르겠다.


삼십 년을 병으로 몇 고비를 넘긴 외로운이가 돌봐준 이를 먼저 보냈으니 말이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소견을 들은 후 열흘만에 이오덕 선생은 숨을 거두었다. 마음으로 그 영전에 진달래꽃 한 다발을 바치며 마지막 편지를 쓴 권정생은 오 년 후에 길고 긴 병과 이별을 고하고 천국의 자유를 얻었다. 두 사람은 글을 나누며 몸을 걱정하고 문학을 세워가며 마음을 나누었다. 감히 부러워하지 못하겠다. 글과 사람에 집중된 그 삶을 어찌 닮아갈 수 있겠나.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훔쳐 보며 눈물 닦는 자리도 감지덕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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