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 쉬하오이
#심리처방
이런거 멀리했었다. 멘탈잡고 살면되지뭐 이렇게 자만했었고 우울증이 심해 죽을 것 같은 그 시절을 덮어버려서 기억날까 무시했었다. 독서치료모임이 독서모임인줄 알고 당당하게 갔다가 당황하는 반쪽님을 모시고 살다보니 표현도 서툴러졌다.
#불안
몇 년전, 상담받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정신이 반짝들어 심리상담이라는 곳에 처음 가봤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웠다는 소리를 들은 후 12월 한파 속을 뚫고 걸었다. 친정아버지 입원실에서 쪽잠을 자며 <당신이 옳다>라는 책으로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문이 보였다. 아이는 고비를 잘 넘기고 다시 밝은 봄을 맞았다.
#교환편지
몰랐다고 변명할 기회를 준다. 마흔이 넘어 어린 딸을 키우는 심리학자가 친정엄마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가족간에 쌓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를 풀어낸다. 심리학자로서 딸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겪는 아픔과 상처를 엄마 앞에서 고백한다. 엄마와 다른 세대를 사는 방식과 치료자로서 만나는 사람들의 경험을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이 인상적이다.
#당연해서
무시했던 순간들, 상처로 긁히고 덧나도 표현 못했던 일들. 가족간에 주었으나 기억하지 못하고 받았지만 잊혀지지 않는 일들. 우리 삶에 너무나 자주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고통스런 경험이 모녀 사이에 소소하게 고백하며 드러난다. 나는 어느덧 책 속의 엄마가 되었다가 순간 딸의 마음에 동감되어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노래 가사로 오해하지 말기를. 말 안하고 표현 안하는 건 때때로 조용한 폭력일 수 있다. 바울이 쓴 사랑장(고린도전서13장)은 나를 뛰어넘는 사랑이다. 내가 가진 고집과 나를 보호하려는 이기적이고 본능적이고, 스스로 깨닫지 못할 정도로 무지한 사랑을 경고하는 것이다. 사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작가는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딸에게 주는 편지로 책을 마친다.
논어의 학이편의 문장으로 사랑의 용기를 키우는 지혜의 단계를 설명해준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배움이 아니라 깨달음을 찾는 과정이다. 나를 알아가면 남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거라고. 결국 너나 잘하세요! 는 내가 잘하면 되는, 이 책의 결론이 나는 맘에 쏙 들었다.
#덧붙임
큰 딸이 여섯살 즈음에 교환일기를 썼다. 한글을 넘 일찍 깨쳐서 천재인줄 알았다. 당시 밥먹듯이 야근을 해서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에 시작했던 거 같다. 지금 스물여섯살인데 이제 내가 열심히 고객님으로 모시고 살고있다. 큰따님의 퇴근시간에 맞춰 밥을 대령하는 것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업무다.
오래살고볼일이다. 나 애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