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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ug 24. 2021

나는 가끔 물건을 모시곤 했어

나의 가치보다 높게 느껴졌던 물건의 위상

(본문 사진은 회당 1,000만 원 이상의 옷을 걸치고 나오던 장만월 사장님, 출처 : 드라마 '호텔델루나')


나에게는 그런 기억이 있다. 물건이 너무 소중해서 쩔쩔매게 되었던 기억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있다. 처음으로 '명품급'의 립스틱 같은 것들은 쓰게 되었던 기억들 말이다. 먼저 이런 물건들의 가격을 말해보자면, 저렴이 립스틱들은 몇 천 원대부터 약 1만 원 안팎이다. 그런데 명품급의 립스틱들은 약 4-5만 원을 호가한다. 뭐 그 정도 가지고? 할 수 있겠지만, 서울에서 빠듯하게 월세까지 내며 생활하던 나에게는 립스틱에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그런 명품 브랜드의 매장은 가끔 나를 압도하기도 했다.


여러 분도 혹시 그런 경험이 있는가? 명품 매장 앞에서, 그 고급스러움에 기가 죽어 여긴 마치 내가 들어가면 안 될 듯한 느낌을 받는다거나, 면세점과 같이 고급 브랜드의 매장이 즐비한 곳에서 내가 초라해진 듯한 느낌을 받는 것 말이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고급 브랜드의 물건들을 처음 소지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물건들에 너무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처음으로 '캐시미어'섞인 코트를 입을 때였다. 코트가 더러워질 세라 노심초사하게 되고, 지인과의 밥 메뉴를 정할 때면 코트에 냄새가 베일 것 같은 곳은 인상이 찌푸려지며,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을 때가 있다. 나보다 물건이 소중하게 느껴진 듯한 그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나의 값어치보다 물건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진 경험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결심한 것이 있다. 바로 내가 그렇게 '모시게 될' 물건 같은 것들은 사지 말자는 것 말이다. 지금이야 나도 '돈'이란 것을 벌어 본 경제활동 인구 경험이 있으니, 내 돈으로 맥북 같은 노트북도 사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지만, 20대 때만 하더라도 참 안타까운 기억들이 있다. 그 물건들의 값어치가 내게는 너무 크게 느껴져서 절대 쿨하게 되지 못하는 순간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각 물건을 사는 나만의 '마지노선' 같은 것들이 있다. 코트/패딩이라도 맥시멈 30-40만 원 선에서 구입하자 같은 것들. 맥북 같은 기기들은 그래도 한 번 사면 꽤 오랜 기간을 쓰니, 이런 기기들에는 좀 더 후해지는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질문을 꼭 나에게 물어본다. 이 물건을 샀을 때, 내가 이 물건의 값어치에 압도되지는 않을까? 내가 이 물건의 값어치를 생각하지 않고, 이 물건의 용도대로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까? 같은 것들 말이다. 


최근 사건의 예를 들자면, 중고로 9만 원을 주고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한 사건이 있다. 블로그를 해오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던 내게 '카메라'는 꼭 항상 사고 싶은 물건 중 하나였는데, 새 미러리스 카메라도 40-50만 원은 금방 웃돌고, 렌즈까지 하나 같이 사려고 하면 금방 100만 원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카메라를 샀다가 몇 번 안 쓰고 그러면 나는 부채감에 시달릴 것 같았다. '이 카메라를 얼마 주고 샀는데...' 하면서 억지로 어디라도 가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부채감 말이다. 그리고 카메라를 볼 때마다 의무감과 '본전'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바로 물건에게 주객전도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또 중고로 사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계속 미뤄지던 카메라 구입이었는데, 최근 당근 마켓을 보다가 하나 구입을 하게 된 것이다. 참 부담이 없는 것이 투입한 가격이 부담이 없다 보니,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활동에도 참 부담이 없는 것이다. (만약 비싼 카메라를 샀다면, 카메라를 무척이나 애지중지 하면서 카메라를 모시고 다녔을 것 같다. 혹은 그 카메라가 익숙해질 때까지 꽤나 낯을 가렸을 것 같다.) (업무에 카메라가 필수인 분에게는 '투자'비용이겠지만, 내게 카메라는 너무나 기호 물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도 명품 좋아한다. 그런데 가끔 그런 LOOK을 발견한다. 전체적인 조화는 맞지 않은 채 멀리서부터 '구찌 가방'이 걸어오는 룩 말이다. 이 설명을 좀 더 돕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기리보이의 flex'라는 노래도 추천한다. 거기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너희 옷이 그게 뭐야 얼른 갈아입어

구찌 루이 휠라 슈프림 섞은 바보

너희 아보키 같아 답이 없다고

나랑 같이 쇼핑 가자 용돈 갖고 와



그렇다. 우리는 가끔 룩의 조화 같은 것들은 생각지 않은 채, 그저 명품이니까 내 몸에 황급히 두르고 싶어 하는, 그 명품 이름값을 황급히 내 몸에 걸쳐놓으면 나도 마치 그 명품의 이름값 같은 사람이 빠르게 될 것 같은 그런 착각에 명품을 사는 듯 도 하다. 그런데 물론 나도 명품 살 돈 여의치 않아서 이러는 거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명품의 값어치를 진짜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을 때, 그 명품에 내가 기에 눌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내가 명품을 '모시는' 사람이 아닌, 명품을 '드는' 사람이 되면 훨씬 더 좋겠다.라는 생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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