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에피소드
수술을 기다리던 3주 남짓,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까지의 두 달 반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내 집에서 내 집처럼 편하게 있을 권리를 위해 애써야 했다. 생각해 보면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며 나를 각성시켰다. 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야 한다고. 지금 너를 둘러싼 환경은 굉장히 이상하다고.
수술 전에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다.
A. 내 자동차 정기점검을 챙기는 시아버님
아버님은 참 신경 쓰이는 게 많으신 분이다. 내 차 정기점검일까지 챙기시니 말이다. 수술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이번 주까지가 내 차 정기점검일이라며 친히 정비소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신다. 가까운 곳보다 조금 멀지만 여기가 오천 원 더 싸다면서.
안 그래도 차에 엔진 경고음에 스탑사인까지 떠 있는 상황이라 불안하여 보험 레커 서비스를 이용해 그 정비소를 갔다. 통상 15분 거리인데 웬걸 그날따라 중간에 도로가 공사 중이어서 1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굳이 레커는 왜 불러서 가냐 차가 혼자 갈 수 있으면 부르면 안 된다. 옆에 기사 바꿔봐라. 하는 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근데 문제는 가보니 내 차 브랜드는 정비하지 않는 곳이란다. 다시 검색해서 집 근처 서비스센터로 간다. (하.... 15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간단한 수리를 하고, (이 사이 견적 나온 대로 다 수리할 필요 없다, 최소한으로 하면 된다 수리공 바꿔달리는 아버님 전화를 받고)
기다리는 중에 정기정검도하는 김에 오늘 받으라고 닦달하는 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건너편 점검소 주소를 친히 문자로 보내주심) 그 근처 정기점검소를 간다.
그날 오전 10시에 집에서 나왔는데 다 끝나고 집에 오니 오후 5시이다. (아 그전에 다 했다고 보고도 드렸다.) 아버님과는 한 시간에 한 번쯤 통화를 한 것 같다. 잠깐 점심 먹는 사이에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체할 것 같아서.
며칠 후 집으로 정기점검 노티스 메일이 왔는데 한 달 후까지만 하면 되더라.
나는 뭘 한 거지. 왜 아버님은 이런 것까지 신경 쓰실까. 나는 왜 다 받아주고 있는가. 의문이 든다.
며칠 전, 아는 언니와 점심을 먹다 시아버지 전화를 받았을 때, 정기점검 챙기라고 하는 소리를 듣더니 아는 언니가 의아한 듯 말했었다.
“너네 아버님은 왜 그런 것까지 챙기셔....?”
B. 성당에 같이 가지 않겠니?
수술 전날, 어머님께 연락이 왔다.
나를 위해 특별 미사를 신청해 놓았으니 입원 전날 같이 가자고 하신다.
아마도 수술날짜가 잡히고 나서 시어머니는 거의 매일 성당에 나가 기도를 하신 모양이다. 이번엔 아예 내 수술을 위한 기도를 따로 신청하신 모양인데 기도빨(?)이 있으려면 내가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나는 ’ 생각해 볼게요 ‘라고 말씀드리고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어머님은 굳이 다시 전화해 네가 안 가면 내가 좀 서운할 것 같다고 기어이 뱉으셨다가 본인 한 말에 신경이 쓰이셨는지 다시 카톡을 보내 부담 준 것 같다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신다.
네 감사합니다. 하고 말았다.
진정 나를 위한 건지 본인 마음의 평안을 위한 건지 모르겠다.
C. 갑자기 울리는 “차량이 이차 하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차량이 들어왔다는 알림음이 뜬다. 남편은 한창 일할 시간이고 내차는 내가 집에 있으니 주차장에 얌전히 있을터. 뭐지 싶어 식겁. 남편에 물어보니 시부모님 차량을 등록했단다. 애들 픽업할 때 도와주실 수 있으니.
좀 미리 말해주지...?
후에 보니 아파트 공동현관 자동열림 어플에도 어머님 아버님도 거주자로 등록되어 있다. 삭제했다.
D. 우리 집 현관문 도어록 건전지가 나갔는데 왜 시아버님께 연락을?
현관 도어록 건전지가 다되어서 경고음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남편에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며칠 후, 아침 출근 전에 남편은 자기가 건전지를 갈아 넣었다고 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남편이 출근한 뒤, 둘째를 유치원 차에 태우고 집에 왔는데 현관문 도어록이 먹통이다. 건전지가 완전히 나가버린 것이다. 남편은 건전지를 새로 사다가 갈아 끼운 게 아니라 급한 대로(?) 아이들 장난감 차에 있는 건전지를 도어록에, 그것도 12개가 필요한 도어록에 8개만 갈아 끼워 넣었다. 장난감 차 건전지는 거의 배터리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 손으로 눌러도 아예 도어록 번호가 뜨지를 않는다.
남편에게 연락을 하니 반응이 재밌다. 미안하다며 도어록 나갔을 때 처리 방법을 적은 네이버 블로그 주소를 공유해 준다. ‘아, 그래...’ 하니 바로 나온 반응이 더 재밌다.
“아빠한테 지금 전화해서 가라고 할까?”
.......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고의 흐름이다. 우리 집 도어록이 안되는데 왜 지금 이 아침시간에 아버님을 불러야 하는지...? 아버님이 무슨 항상 스탠바이 상태인 우리 집 전담 홍반장이라도 되는 건가...?
열쇠집 아저씨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다 전화를 걸어 블로그 내용을 물어만 봤다. 아 7 볼트짜리 건전지를 사 와서 잠시 대고 있으면 되는구나. 살펴보니 도어록 측면에 대는 곳이 있다. 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건전지를 8개 사 왔다. 나도 열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12개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 나가서 더 사 왔다. 그래. 그냥 산책 삼아 편의점 두 번 가면 해결되는 일이다. 시아버지 도움까지는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