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 카톡 좀 보내지 마
친구 K가 오늘도 어김없이 카카오톡으로 푸념을 합니다. 상사가 알지도 못하고 미친 소리로 자기를 괴롭힌다는 게 주된 논지입니다. 어 그래. 대꾸할 시간도 없어 내려놓은 스마트폰이 20분 가까이 울리다 잠잠해집니다.
K가 입사한 회사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카톡으로 잡담할 시간이 있는 걸 보면 분명 잘 나가는 회사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다 =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시간이 남는 회사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저희 회사처럼 망해가는 회사일수록 일이 많아서 카톡 할 시간 따윈 없거든요(거래처들이 돈을 안 주려고 하니까 소송만 엄청 걸기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물론 잘 나가는 회사라고 다들 한가하다는 소리는 아닙죠, 네. 오해 마세요.
생각난 김에 사내변호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사내변호사, 단어의 뜻은 간단합니다. 기업, 회사에 입사해 일하는 변호사죠. 전통적인 직무인 소송수행(송무)을 겪게 되는 일이 적으면서도, 독립성을 지닌 변호사인 동시에(변호사 휴직을 하지 않는 한) 조직의 일원으로 행동해야 하는 위치라는 점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직역입니다.
대부분의 상장사에 법무팀이 갖춰진 요즘에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예전 사법연수원에서 법조인을 선발하던 시절에는 대부분 법원, 검찰에 가거나 로펌에 입사해 전통적인 송무를 수행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변호사가 기업에 입사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었죠.
굳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바로 개업을 하거나 로펌에 입사하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이때만 해도 송무만이 전통적인 변호사의 직역이라는 시각이 다수이던 때였기에 기업에 입사한 변호사들은 실제와 달리 송무를 '포기'하고 나간 변호사들로 지칭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굳이 다른 직역과 구분하기 위해 사내변호사라는 조어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이젠 사내변호사가 꽤 인기 직종이 된 모양입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경우 한 명을 뽑는다 치면 경쟁률은 수백 대 일까지 치솟고, 10대 그룹 정도면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고용변호사님들도 법무팀 지원을 한다고 하네요. 이유는 간단해 보입니다. 시장이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송무시장은 대형 로펌 외에는 다들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한 지 오래입니다. 개인 법률사무소들은 고정된 단골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정말로 폐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데가 꽤 많습니다. 송무시장의 수요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면서 안정적인 조직에 눈을 돌리게 된 변호사가 늘어나게 된 것이지요. 변호사가 되었다 쳐도 고객을 모을 자신이 없는 이상 준비 없이 바로 개업하는 것도 무리니까요.
대신 공급이 늘어난 만큼 처우도 낮아졌습니다. 과거에는 기업에 변호사로 입사할 경우 임원급의 자리가 주어졌지만 최근에는 차장, 과장급이 일반적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법조인 선발 체계가 변경되면서 매년 다수의 변호사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 반면, 누구나 인정할 만큼의 좋은 일자리는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호칭만 봐도 그렇습니다. 여전히 삼성 등 일부 기업에서는 사내변호사의 직급을 일반 직원과 별도의 '변호사' 체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사내변호사에게도 일반 직원에 상응하는 직급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든 아니든 다 같이 사이좋게 이 과장님, 김 차장님이 되는 것이지요. 조직 융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도 있지만, 변호사 직급일 경우 좀 더 책임감을 느낀다고 하는 의견도…
변호사가 아닌 상급자와 변호사인 실무진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상급자는 법리를 잘 모르니 무시당할까 나름 스트레스받고, 변호사는 불합리한 지시를 받게 된다고 생각해 입이 댓 발 나오기 일쑤인 곳도 있습니다. 때문에 차라리 부담은 되더라도 혼자 일을 처리하는 '1인 법무팀'이 낫다는 푸념을 하는 친구도 있을 정도인데, 항상 그렇듯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다만 이런 분쟁이 많아 다수의 변호사가 그만두는 곳은 법무팀 구인공고를 한두 달 만에 여러 번 재차 올리게 되고, 변호사 커뮤니티서는 이런 기업은 소위 '블랙 회사'로 불리게 됩니다. 어지간히 조건이 좋지 않은 이상에야 지원 기피업체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사내변호사의 이직은 어느 정도 진로가 정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1~2년 정도의 경력이라면 다시 송무시장으로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나, 그 이상이 된다면 소송 진행에 대해서는 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법무법인 등에서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이 부분은 제가 HR 담당이 아니어서 확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 기업의 경우 다른 기업 인하우스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의 진로로 파악되는데요. 다만 금감원, 공정위 등 특수한 회사의 경우 좀 다른 진로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어딜 가나 돌아이 보존의 법칙은 존재하는 만큼, 다른 조건이 다 좋은데 유독 '사람이 싫어서' 이직하는 일은 되도록 신중히 하는 게 좋습니다. 이 바닥이 생각보다 엄청 좁고, 이상한 놈 하나 피해서 이직했더니 그에 버금가는 놈 셋이 사수로 있던 경우도 있습니다 네.
글이 너무 길면 잘리려나. 그럼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