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블랙 로펌 04화

블랙 로펌 -4-

간잽이는 이제 그만

by 익명의 변호사

1. 실무형 면접


지난 겨울이었다. 2년차 변호사인 박 변호사는 코스피에 상장되어 있던 한 건설사에서 면접을 봤다. 결혼을 했던 그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필요로 했고, 사내변호사로 진로를 정해 이력서를 돌린 끝에 몇 곳에서 면접 연락을 받았다. 이 건설사는 '실무형 면접'을 본다고 미리 공고한 곳이었다. 면접장에 들어간 그가 받은 것은 두툼한 서류뭉치였다. 소장이었다. 서류뭉치가 하나도 아니고, 무려 일곱 개였다.


성마르게 생긴 면접관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이 소송은 현재 진행되는 현안들인데요, 이에 대한 준비서면을 작성하시는 것이 면접 과정입니다."

"전부 다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단호박인줄.

"…."


다행히 준비 기간은 길게 필요하지 않은 서면들이었다. 다만 7개라는 점이 문제였다. 박 변호사는 2주일 동안 주말을 꼬박 바쳐 정성들인 서면을 작성했고, 해당 건설사에 등기 우편으로 보냈다. 박 변호사는 탈락했다.


탈락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 변호사의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알고보니 이 회사는 변호사를 면접하면서 자기 회사에 들어온 소송을 던져주고, 이를 통한 답변으로 공짜로 소송을 해결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미 자기보다 앞서 두어 명의 면접자가 같은 방식으로 당했다는 건 뒤늦게 안 사실이었다. 박 변호사는 서면 작성의 대가라도 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이 회사는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 법조계는 늘 평범하게 부당하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편이지만 이렇게 구직 중인 변호사들을 이용해 현안을 (공짜로) 해결하려는 법인이나 로펌은 아직도 존재한다. 구직자의 노동력을 갈취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이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면 얄짤없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연수원 로스쿨 양쪽 공히 마찬가지다. 더구나 회사의 경우 현안의 쟁점을 간단히 물어보는 정도라면 모를까, 법원처럼 서면까지 작성하는 '실무형 면접'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편이라 이러한 경험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빨리 공유가 된다. 이후 그곳은 아무도 가지 않게 된다. 그렇게 블랙이 되는 것이다.


2. '로스쿨 실무수습 전문' 로펌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변호사님들은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실무실습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야 비로소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 및 개업신고를 할 수 있다(변호사법 제31조의2 제1항, 제4조 제3호에 따른 변호사는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통산하여 6개월 이상 법률사무에 종사하거나 연수를 마치지 아니하면 사건을 단독 또는 공동으로 수임할 수 없다). 법률사무종사시관은 법무부에 신청하여 지정을 받으면 된다.


다시 말하면, 지정된 법률사무종사기관의 실무수습을 거치지 않을 경우 변호사 합격자라도 변호사 등록을 할 수 없고, 변호사라는 이름도 쓸 수가 없다. 소위 물 좋다는 실무수습 자리가 경쟁이 치열한 이유다. 변호사 경력의 시작은 사실상 실무수습부터기 때문이다. 실무수습 이후 채용까지 이어지는 것을 '채용전제'라 하는데, 좋은 로펌이나 회사에서 채용을 전제로 실무수습 중인 변호사님들 얼굴을 보면 어쩌면 그리도 밝으신지(…).


물론 채용전제의 반대는 '채용비전제' 실무수습이다. 이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향후 채용을 전제한다며 고용해놓고 실무수습 완료 직전 혹은 직후 변호사님들을 팽해버리는 경우가 문제다. 변호사의 고용 및 해고가 사무실 사정에 따라 일반 회사원에 비해 자유로운 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 싸게 부리는 실무수습 기간만 부려먹으려는 의도를 숨기는 것은 사실상 사기나 마찬가지다. 당하는 변호사의 커리어도 꼬여버린다는 점에선 악질적이다. 이른바 '실무수습 전문 로펌'이다.


이런 블랙들이 로스쿨 졸업생들의 실무수습 기간만 침흘리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일반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 비해 비용이 저렴해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로스쿨 졸업생들의 실무수습기간 동안 받는 급여는 변호사시험이 실시되면서 매년 낮아졌다. 공급이 많아지는 이상 당연한 것이겠으나 그 하락폭은 급격하다. 변호사시험 1기, 2기 졸업생들이 실무수습 기간 동안 세후 45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면 5회 변호사시험이 지난 지금 블랙들이 제시하는 월급을 보면 가관이다. 하나같이 월급 200만원 이하, 심지어 '일을 배우게 해주니 너희가 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무급을 제시하는 간 큰 블랙들도 있다(2016년 최저임금 월 환산액은 126만270원이다).


블랙들은 6개월이 지나면 가차없이 잘라버린다. 6개월이 지나면 정식 채용계약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1년차 변호사들의 월급 평균은 서초동 기준 세후 350만원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6개월 동안 최저임금에 가깝게(혹은 그보다 더 낮게) 노예처럼 부려먹었는데 정식으로 채용하면 3배 가까운 급여를 줘야 한다는 소리니 대표변호사는 피눈물이 날 만큼 아까울 수밖에. 그래서 자른다.


변호사시험 끝나고 뽑아 6개월 부리고, 자르고 다른 분 새로 뽑아 6개월 부리는 구조다. 그러면 또다시 변호사시험을 마친 졸업생들이 쏟아져나온다. 인건비를 아끼고 싶은 블랙들로서는 환호작약할 지경이다. 한 블랙 대표변호사는 "로스쿨은 마치 마르지 않는 화수분과도 같다"며 좋아했다. 그 법인 자문 이번달로 끊었다.


블랙들의 실무수습 모집 공고는 주로 1월, 즉 변호사시험 직후 시작된다. 시험을 보고 난 후 '놀면 뭐해'라는 생각을 가진 졸업생들의 심리를 노리는 것이다. 잘 살펴보는 것이 좋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채용정보사이트를 보면 주기적으로, 자주 실무수습 변호사들을 구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거기다. 로스쿨, 연수원 커뮤니티에서 '여기만 피해라'며 두문자로 거론되는 곳들이다.


블랙에 갔다는 경력은 플러스는커녕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는다. 당신도 안심할 처지는 못 된다. 5개월이 지나는 순간부터 대표변호사가 쌀쌀맞아졌다, 지금까지 문제 없었던 서면의 꼬투리를 자주 잡거나 욕을 하게 됐다, 이런 징후가 보인다면 빨리 이직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우리 회사도 지난 4월 두 분의 실무수습 변호사들을 고용했다. 월급 100만원에 채용비전제다.


이제 슬슬 꼬투리를 잡을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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