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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변호사 Nov 25. 2021

4인 이하 사업장에서의 갱신기대권

소규모 사업자 유의사항


1.

변호사 A 씨는 법조윤리협의회와 근로계약 기간을 2018년 3월 5일까지로 하는 근로계약 및 연봉 계약을 맺고, 2017년 3월부터 협의회 사무국장 겸 상근 관리관으로 근무하였다. 법조윤리협의회는 변호사법에 근거해 2007년 설립된 법정 단체로, 설립 이래 A 씨 외에 3명의 사무국장과 6명의 사무국 직원을 1년 기간제로 채용하였는데, 이들이 스스로 퇴직을 원하지 않는 한 예외 없이 해당 근로계약을 갱신해왔다.


A 씨도 이듬해인 2018년 한 차례 계약이 연장됐고 사무국장으로 근무를 계속하였다. 당시 협의회는 근로계약 만료일이 다가오자 A 씨에게 재계약 희망 여부를 물은 후 특별한 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계약을 연장해 주었으나, 2019년에는 A 씨와 재계약 여부에 대해 대화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협의회는 2019년 1월 21일 "집행부 임기 만료가 임박한 시점에 A 씨의 연임을 결정하기가 어려우니, 계약이 종료되는 것으로 하고 신임 집행부가 오는 5월쯤 다시 지원하라"며 계약 만료 이후 재계약을 할 의사가 없음을 통지하였다.


A 씨는 2019년 12월 협의회를 상대로 "계약이 갱신될 수 있다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며 "합리적 이유가 없는 갱신거절은 무효"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고, 재판에서 "원고 업무는 피고의 회계 예산을 담당하고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는 등 상시·계속적이고 중요한 업무였으며, 피고의 사무국장 및 일반 직원들 중 본인이 계약 갱신을 원하는 한 갱신이 거절된 사례가 없었다"라고 주장하였다.


협의회는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해당함으로 이 사건 계약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의 해고 제한 규정 자체가 적용되지 않고, 따라서 원고에게 갱신기대권의 범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피고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근로계약 기간 만료일에 근로계약 관계가 종료하고 근로자는 당연 퇴직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피고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으면서 작은 규모의 조직을 저예산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사무국장들과 1년 단위의 계약직 근로계약을 체결해 왔고, 피고의 전임 사무국장 또는 직원들의 경우 근태에 문제가 없어 근로계약의 갱신이 거절된 사례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

소송의 최대 쟁점은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하는 법조윤리협의회에서도 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였는데, 본래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의 경우 기간이 만료되면 그 계약은 끝이 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기간만료에도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당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었거나 △그런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근로자에게 그에 따라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을 것이란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고, 이런 경우에는 사용자가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경우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고, 기존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똑같이 계속 근로관계가 유지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판사 마은혁)는 협의회가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갱신기대권에 관한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벙붠은 "원고에게 이 사건 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됨에도 피고가 합리적 이유없이 이 사건 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어 갱신거절은 무효"라며 근로관계가 존속하는 만큼 A 씨가 복직하는 날까지 임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하였다.


재판부는 "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 그에 기초해 인정되는 것으로, 근로기준법상 해고 등 제한 규정과 취지 및 그 요건이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 형성이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시하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A 씨와 협의회 사이에 계약기간 만료에도 일정요건이 충족되면 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A 씨가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 역시 갖고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피고는 변호사법에 근거해 2007년 설립된 기관으로 존속기간의 정함이 없을 뿐 아니라 법조윤리를 제고할 필요성에 관한 우리 사회의 높은 관심을 고려할 때 계속적인 존속이 예정되어 있다"면서 "사무국장의 업무는 피고의 상시적인 업무에 속해 피고로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기간(1년)마다 새로운 사무국장을 채용해 업무를 수행하기보다 기존 사무국장과 체결한 근로계약을 갱신해 그 직책을 유지시킴으로서 업무연속성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어 "협의회는 2018년 12월 원고에게 2019년 상반기 기획기사 관련 자료의 준비를 지시하고, 원고의 계약만료기간 이후 대학 출강을 승낙하기도 했다"면서 "협의회는 계약 기간만료일 이후까지 수행할 것이 예정되어 있는 업무에 관하여도 원고에게 지시 또는 승낙을 하였는 바, 이로써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계약의 기간만료일 이후에도 원고가 사무국장으로서의 직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설시하였다. 협의회가 A 씨의 이러한 갱신기대권을 배제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협의회 측이 계약 갱신거절의 이유로 든 △지각 △조사업무 거부 △직원 소통부족 등 각각의 사유를 배척하였다.


협의회는 항소했고, 이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현재 협의회는 5억여 원의 예산(변협, 법무부, 법원 등이 나누어 갹출하는 모양이다) 가운데 상당 액수를 공탁금으로 걸었고, 이 과정에서 임대차보증금을 일시 반환받고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지원금을 받는 등 여기저기 손을 벌리고 있다. 이 사건의 결과에 따라 협의회가 길가에 나앉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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