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을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마치 온몸의 신경이 혀와 연결이 돼있는 것처럼 모든 근육을 움직여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 힘을 모아서. D는 그의 목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그럼에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많았다.
'고독하다. 외롭다. 세상에 나 혼자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D는 그런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삶은 모든 방향에서 궁핍해지기만 했다. D는 항상 세련되고 모던한 글을 쓰고 싶었으나 D도, D의 글도 갈수록 더 비루해져만 갔다. 울고 싶었지만 D의 우울은 항상 눈물샘 직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불편한 몸을 움직여 자신이 보는 책을 꺼내보였다. <주역>, <논어>, <맹자>, <구약성서>, 정식으로 출판된 것이 아닌 제본된 책이었다. 모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책이었다. D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나왔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 그런 책 말이다. 특히 <주역>은 거의 대부분이 한자로 돼있었다.
"소용이... 없어요."
"네?"
그는 낡은 <주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나오는 말들... 지금 세상에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렇게 생각해요?"
D는 입을 꽉 다물었다. 곧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지금 세상이 이런 말들이 적용이 안 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세상은... 지금 TV에 나오는 저거 같아요."
D는 텔레비전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침방송 같은 프로그램에서 곰을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저런 정글이요? 세상이 저런 사냥터 같아요?"
D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쏟아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D는 눈물을 닦아내고 코를 풀었다. 그리고는 손을 대충 바지춤에 닦았다. 이제 방송에선 패널들이 곰사냥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단지 먼 외국이 아니라,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그가 말하는 'TV에 나오는 저거'에는 저 모습도 포함하는 것일까. D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본인이 저기 나오는 곰 같아요?"
"아니요...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냐... 무쓸모 해요."
"왜 그런 생각을 해요. 누가 그래요."
"내가 없었으면 선생님도... 이런 시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무슨... 뭐가 시간낭비예요..."
D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돼있었다. D는 자신이 이런 일과는 전혀 맞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차분해질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자신은 감정 흡수율이 너무 높다고 D는 생각했다. 왜 이렇게 계속 눈물이 흐르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냥터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신도 몰랐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 왜 사는가. D는 남은 생동안 그 대답을 절대 얻을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날은 무더웠고, 내린다는 비는 내리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가 D가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에 쓸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