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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03. 2022

고양이 다이어트

#03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 초등학교 3학년 되면 사줄게.


엄마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던 태곳적 서약의 문장이지만, 어제오늘 깜박깜박하는 성인이 된 지금도 나에겐 쉽사리 잊히지 않는 약속이다. 아마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도 저 문장을 망각하기엔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엄마는 매년 숫자만 바꿔서 내게 저 문장을 읊조렸다.

초등학교 4학년 되면 사줄게.

초등학교 5학년 되면 사줄게.

초등학교 6학년 되면 사줄게.

그 내년이 되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단어가 바뀔 테고 숫자도 다시 차근차근 교체될 것이다.

자식과의 약속이 매년 이어진다는 것은, 그것이 매년 지켜야 할 약속이거나 아니면 매년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내가 저 약속을 망각하기 힘든 두 번째 이유가 바로 매년 지켜지지 않았다는 후자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매년 남발했다.

순진했던 나는 내년에야말로 기필코, 비로소, 원하는 것이 손에 들어올 줄 알았다. 올해 지켜지지 않았다면 내년에는 꼭, 그것도 안 되면 내후년에는 꼭!

약속이 거짓이라는 것을 결국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정해버렸다.

아, 엄마가 사주기로 했던 것은 강아지다.




대부분의 아이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유달리 동물을 좋아하는 축에 끼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강아지 품종을 달달 외우고 다녔으며 동물도감까지 구입해 늘 품에 껴안고 살았다. 특히 강아지 도감에 나온 진돗개의 특성은 어린 나를 울리기에 충분했는데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충성한다는 그 특징이 어린 내가 읽기에도 꽤나 애처로워 보였다. 저 특성 하나 때문에 나는 언젠가는 진돗개를 키워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때의 우리 집은 작디작은 빌라에서 4인 가족이 거주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 크지 않은 집이 진돗개에겐 감옥처럼 느껴질 것이 자명했기에, 키울 강아지의 품종을 진돗개에서 작은 푸들로 변경하는 혼자만의 합의도 봤다.



지금 뒤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 강아지를 키우지 '못함'이 엄마의 의도치 않은 선견지명이었음이라 생각한다.

생명에 입양이 아닌 구매의 의미를 뜻하는 동사가 붙는다는 게 얼마나 끔찍하고 비윤리적인지 깨닫는 나이가 되었고, 나는 내 한 몸 건사하기 괴로운 존재로 자라 그 많던 강아지 품종은 고사하고 당일 점심 메뉴조차 기억해내기 힘든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통장에 노동의 대가인 숫자가 찍히는 것을 볼 때마다 입양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기 외로움의 보충을 타 생명체로 해결하려는 행위가 진돗개를 작은 감옥에서 살게 하는 학대 행위랑 다를 게 없이 느껴져서 이기적인 생각을 금세 포기했다. 나 같은 사람에겐 유기견 보호소 기부라는 행위도 존재하니까 숫자로 내 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한 생명체를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또한 나에게 사랑을 보여준 후 나보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널 내 새끼를 생각하면 온전히 홀로 괴로움과 그리움을 견뎌낼 자신도 없었다.



그런 나와 다르게 강심장인 주위 친구들은 자취를 시작하면서 하나둘 반려동물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카테고리만 반려동물로 뭉뚱그려 묶였지, 사실 열에 아홉은 고양이가 차지했다. 그런 친구들 덕택에 나 또한 고양이를 접할 기회가 정말 많아졌는데 한동안 내 입에서 자주 나온 대사는 나만 없어, 고양이! 일 정도로 정말 압도적인 비율일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다르게 너무 친한 척을 하면 영영 멀어지는 수가 있다. 

그래도 어릴 때 도감을 읽었던 유치원생의 관록이 있어서인지 친구네 고양이들은 내게 낯을 가리지 않았다. 이래서 가방끈이 길어야 하나 보다. 유치원생의 배움이 뒤늦게 발휘할 줄은 몰랐다. 물론 그 흔한 하악질 또한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히 하악질을 하기 전에 간식으로 매수하는 꾀를 부렸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네 고양이인 ‘미미’는 유독 다른 친구네 고양이보다 약간 통통했다. 미미의 덩치는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히 이름에 '아름다움'이 두 번 들어갈 만한 외모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귀여운 미미를 못 참고 몇 번 간식을 준 적이 있다. 친구는 나와 미미가 부스럭 소리만 내도 득달같이 다가와 안돼, 주지 마, 먹지 마, 소리를 비상경보처럼 발사해버려 항상 귀에 딱지가 앉은 상태로 귀가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미는 귀여운데 왜 못 먹게 하고 살을 빼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친구에게 미미의 귀여움을 토로하며 왜 살을 빼게 하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미미는 외적인 귀여움을 위해서 다이어트하는 게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빼야 해.”

“미미가…… 살찐 편인가?”

“고양이치고는…… 덩치가 있는 편이지……”



집으로 돌아와 야식을 먹으려 배달 앱을 켠 때였다. 친구의 안돼, 먹지 마, 소리가 글자로 변해 눈앞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대로 앱을 다시 닫고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고양이였으면 예쁜 고양이였을까, 아니면 안 예쁜 고양이였을까.

아니, 이 질문은 틀린 질문이다. 모든 야옹이들은 예쁘지만 난 고양이가 아니다. 난 사람이니까.

친구네 고양이는 외적인 귀여움이 아닌 건강 목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와 반대로 난 건강 목적이 아닌 외적인 이유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난 미미가 통통해도 이뻤는데 주위에서는 나에게 통통해도 괜찮다는 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다. 미디어에서는 미의 기준으로 언제나 날씬함을 꼽았다. 난 그 기준에 늘 탈락한 사람이다.

엄마가 누누이 말하던 건강 철칙이 있었다. 사람은 허벅지가 튼튼해야 늙어서도 건강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난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건강과 외모를 등가교환해야 하는 입장에 섰다.



미미는 곧 제한 급식을 시작했다. 제한 급식의 여파는 미미를 변비로 몰고 갔다.

나도 식단 조절에 들어갔다. 빠듯한 식단 조절은 사람의 인성을 약간씩 망가뜨린다. 인상 쓰고 출근하는 날이 늘어 갈수록 탕비실에선 내 몫의 간식이 사라졌다. 덤으로 나 또한 변비에 걸렸다.

친구 집에 갈 때마다 미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도 나랑 똑같은 신세구나.

난 고양이도 아닌데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 이 정도 통통함은 건강에 이상이 없으니 나만 행복하면 되지만, 주위 사람들은 끝없이 지적의 화살을 쏘아댄다.

- 넌 살만 빼면 좀 괜찮을 텐데.

- 그래도 여자니까 살을 빼야지.

- 미용 몸무게라는 게 있잖아.



고양이 장난감으로 캣휠, 즉 쳇바퀴라는 물건이 있다. 고양이들은 쳇바퀴 안에 들어가 휠을 굴리며 활동량을 늘린다.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지만 덩달아 미미 같은 아이에겐 다이어트 효과로도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정작 쳇바퀴 안에 갇힌 것은 나인 것 같다. 쳇바퀴는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와 그 작은 공간에 나를 가두고 하염없이 다리를 움직여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돌고 돌고 또 돌고. 아주 지독한 다이어트의 굴레 속에 빠져버렸다.

우리는 고양이가 아닌 사람이라서, 건강이 아닌 미용 목적으로 끝나지 않는 다이어트의 굴레가 허용되는 존재인가 보다.



미미는 1kg의 살을 뺐고 다시 조금씩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집사인 친구가 약간의 간식은 허용해줬나 보다. 난 아직도 몸이 조금이라도 부은 날에는 습관적으로 풀때기를 찾는다. 나도 빨갛고 느끼한 음식을 먹고 싶지만, 내부와 외부에서 던지는 죄책감의 돌을 피할 여력이 점점 사라졌다.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이 애환을 미미는 알아줄까.

고양이 다이어트 사료는 여러 가지 맛이 있다던데 정녕 미미 팔자가 나보다 낫다.






Photo by JuniperPhot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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