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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03. 2022

Hi 영어, Bye 영어

#02 침묵하는 인간

영어를 처음 공부했던 순간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히 재생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은 사교육 열풍이 심하지 않았는데(우리 동네만 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른 동네의 사정은 나도 잘 모른다), 당시 하교하고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기 바빴던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영어를 처음 접했다.

영어 시간도 다른 과목 시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각자의 영어 교과서를 챙기고 시청각실로 이동하라고 안내를 했다. 시청각실에는 컴퓨터와 연결된 매우 큰 텔레비전이 있었다. 선생님이 컴퓨터에 CD를 삽입하자 곧 텔레비전 화면에는 웬 외계인같이 생긴 애가 튀어나왔다. 그 초록 색깔의 괴생명체는 본인 이름을 ‘지토’라고 소개하면서 이상한 외계어로 노래를 부르며 내 혼을 쏙 빼놓았다.

‘헬로 지토 헬로, 헬로 지토 헬로’



공부를 싫어하는 초등학생의 집중력은 외국어에 대한 흥미도를 끌어올리기에 영 도움 안 된다. 영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아이에게 낯선 문장을 가르쳐봤자 그냥 외우기만 할 뿐이지 외국인을 보면 영어로 소통해야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영어 시간을 기다렸다. 지토는 모든 영어 단원의 주요 문장을 노래로 불러주었다. 영상으로 학습을 해서 애니메이션 보는 기분도 났고 지토의 노래 덕분에 다른 과목처럼 딱딱한 학습 시간으로 한 시간이 흘러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시험 따위가 없었으니 그냥 지토를 따라 노래 부르며 즐기면 됐다.

지금도 지토의 히트곡을 꽤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영어로 월月을 말할 땐 지토의 노래인 ‘재뉴어리, 페뷰어리, 머치’를 부른다. 내가 말하고 싶은 월이 10월일지라도 난 1월부터 노래를 부른다는 소리다. 10월? 잠시만, 재뉴어리, 페뷰어리, 머치, 이 노래를 쭉 부르다가 손가락 열 개가 다 접히는 악토버에 다다라서야 악토버가 10월임을 인지한다.



영어 단원평가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치러졌는데 다른 과목과 달리 영어 점수가 낮게 나오자 엄마는 특단의 조치로 나를 동네의 저렴한 영어 공부방에 보냈다. 가계부에 학원비가 차지할 공간은 없었지만 그간 미장원을 운영했던 엄마의 인맥이 빛을 본 순간이다. 이래서 부모의 지인 찬스란 절체절명의 순간에 엄마를 기쁘게 만들고 자식은 공부라는 고문의 늪에 빠뜨려버린다. 

문장만 노래로 외웠던 학교의 영어 시간과는 달리 공부방에서는 단어를 외우게 하고 심지어 영작하는 법을 가르쳤다. 영어 기초가 아예 없던 나는 수업을 따라잡기가 너무 어려웠다.

사과가 왜 apple인지, 기차가 왜 train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어를 줄줄 외워 쪽지 시험 보는 날에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책상에 앉아 단어장을 펼쳐서 가만히 들여다보는 어느 순간에 다다라서야 영어의 원리가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영어도 한국어처럼 언어에 불과하니까 작용원리는 똑같을 거야. 영어 알파벳과 한글의 순서는 똑같겠지 뭐, 한글 자음부터 시작해서 ㄱ은 a를 의미하고 ㄴ은 b를 의미하고.

저 원리대로 알파벳과 한글의 짝을 하나하나 맞춰갔다. 하지만 짝을 맞추고 다시 단어장을 보니 사과가 왜 apple인지 더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깨우친 영어의 원리로는 사과의 스펠링은 a가 아닌 g로 시작했어야 했다. 어느새 내 뒤로 다가온 엄마는 알파벳이랑 한글 순서는 서로 상관없어, 라는 무감한 말만 던지고 갈 뿐이었다.



그 후로 영어와 나의 내외는 계속 이어졌다. 우리 사이는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공부에 손을 놓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에 들어서고부터는 간극이 더욱 좁혀지질 않았다. 이 어색함은 고2 야자시간 때 원치 않게 깨졌는데,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요.’ 수준의 나의 영어 실력을 보다 못한 담임의 노력으로 허물어진 것이다.

담임은 내게 영어문제집 3권을 가져다주고 야자시간 내내 풀게 시켰다. 기초부터 중급, 고급으로 나뉘어있던 영어문제집은 기초도 풀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야자시간 내내 붙잡고 있다 보니 영어의 문장 구조가 어느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갑자기 영어 전체가 머리에 들어왔어요, 같은 기적이 발생한 것은 아니고 다른 아이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정도다.



뭐 뻔하게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하고, 토익은 990점 그 근처에 가본 적도 없는 대학 생활을 이어가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취업.

한평생 한량으로 살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취업이라는 지옥문 앞에 내쫓긴 것이다. 취업 공포는 파도처럼 나를 덮쳐와서 헤엄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은 바닷속에 빠지게 됐다. 나는 밤마다 잠을 설쳤고 퀭한 눈으로 도서관을 전전했다.

아직 준비된 것이 없는데 시간은 나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으니 내가 선택할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었다. 나는 잠깐뿐인 시간을 벌기 위해 그렇게 외국으로 도피를 택했다.



학교에서는 재학생들을 위해 면접과 성적만으로 소수의 인원을 뽑아 무료 단기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아마 취업에 대한 무지막지한 공포로 인해 어학연수를 선택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단기 어학연수’란 말도 사실 매우 거창했다. 기간은 길어봤자 석 달 뿐이었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한 계절이란 시간은 내게 잠깐의 도피처를 제공하기엔 충분했다.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시간을 벌기 위해 친구의 어학연수 지원 포부에 숟가락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급조된 어학연수는 내 지원 동기의 공란을 채워주기 힘들었고, 보다 못한 친구가 빼어난 소설을 써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내 청춘의 은인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우리는 홈스테이 형태의 숙박시설에서 체류하게 됐다. 홈스테이 가족들은 친절했지만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묵게 된 홈스테이 가정엔 가족사진이 많았는데 거실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 어린 아들과 딸인 3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가족과 친해지고 싶은 바람에 ‘가족들 모두 닮았네요.’라는 짧은 영어로 감상평은 내놓았다. 알고 보니 가족들 전부 다 피가 섞인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재혼했는데 아빠는 할머니가 데려온 자식이었고 어린 아들 또한 엄마가 아빠와 재혼하면서 데려온 아들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내 감상평을 듣고서 다들 머쓱하게 웃던데 난 내 영어 발음이 구려서 그런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기론 제발 구려서 못 알아먹었길 바란다.



짧았던 단기 어학연수는 내게 약간의 숨통을 틔게 해주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 또한 같이 던져주었다.

내 이름인 이이안은 영어로 표기하면 Ian Lee가 된다. 영어권에서의 ‘이안’은 남자 이름이라고 한다. 어릴 적 짧은 머리로 남자아이라 놀림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더는 누구에게도 성별을 헷갈릴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불현듯 옛날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인터넷 로맨스 소설이 판치던 학창 시절에 외국인 남자주인공 이름이 ‘이안 어쩌고 저쩌고’였으면 기겁하고 페이지 뒤로가기 버튼을 눌렀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이안과 다른 주인공이 키스하는 장면을 읽을 거라 생각하니까 소름이 끼칠 수밖에. 아쉽지만 영어 이름으로 이안은 패스야.

어쩔 수 없이 귀여운 애칭 느낌으로 내 이름의 끝자리인 ‘안’을 따서 영어 이름을 지었다.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안’이라 불러달라며 요구했다.

문제는 그놈의 스펠링에 있었다. An, Ann 어느 스펠링을 써도 버터 바른 외국인의 입술에서는 ‘앤’이란 발음이 흘러나왔다. 면식 있는 친구들에겐 발음을 정정해줬지만 처음 보는 외국인이 스펠링을 보고서 내 이름을 ‘앤’이라 부르는 것까지는 간섭하기 귀찮았다.

그렇게 내 영어 이름은 ‘앤’이 되었다.




-앤~, 애슐리~, 너네는 영어 공부한 지 얼마나 됐어?


같은 클래스에서 수업을 받으며 친해진 릴리가 나와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애슐리는 같이 어학연수 온 우리 학교의 같은 과 친구였다. 고맙게도 본인 숟가락을 내게 나눠준 장본인이다.

릴리의 본명은 '릴리안 어쩌고'다. 프랑스인으로 성은 도저히 발음하기 어려워 외워지지도 않는다. 어차피 그녀도 우리의 본명을 발음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현재 스페인어도 같이 공부하고 있다며 어느 정도의 스페인어로 대화가 가능한 정도라고 한다. 스페인어 공부한 지는 이제 3년 정도 됐다고 말도 덧붙였다.

영어 공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부터 계산해서 고등학교까지 생각하면 12년.

영어를 접한 지 벌써 도합 12년!

영어 공부한 지 벌써 도합 12년!

아니지, 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 배웠으니 아직 10년밖에 안 됐다. 또 아니다, 대학에서 교양 영어 수업도 꾸준히 듣고 있으니 어쨌든 도합 12년!

애슐리와 난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서로의 눈에서 무언의 텔레파시를 느꼈다.

우린 릴리에게 영어 공부한 지 2년밖에 안 됐다고 구라를 쳤다.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내 영어 실력이 월등히 향상된 것은 아니다.

‘단기’라는 기간에 원체 기대를 걸지 않았다. 지난 12년 동안 ‘유창함’이란 결국 성취되지 못한 단어이기에 내 기대치는 애초에 생기지도 않은 값이다. 그래도 외국에서 돌아와 착실히 토익 공부도 이어가고 영어 회화 학원도 다녔다. 요즘은 국내파들도 유학파 못지않게 혀가 유연하다던데 내 혀는 참 빳빳하여 버터를 먹이려면 장기간 해외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장기 유학은 선택받은 소수나 노력하는 독종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나는 취업 전 감질나게 버터 향만 맡았던 기억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 앞에 떨어진 취업 불을 끄기에도 이제 정신이 없다. 심지어 외국인을 보면 약간의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는 자랑을 하면서 자책도 동시에 시도한다. 말 그대로 아주 약간의 의사 표현이기 때문이다. 외국 유치원생과 말싸움을 한다면 무조건 질 게 뻔하다.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원치 않은 공격을 퍼부었던 때처럼,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금발 벽안의 이방인을 보면 지금도 나는 대부분 침묵을 택하는 편이다. 지토가 나를 보면 장하다고 할까.

장하다는 노래를 지토가 불러준 기억은 없다.

내 짧은 시간 노력의 산물인 영어는 직장에 들어와서 쓸모없는 것으로 절하됐다. 직장에서 쓰이는 문자는 알파벳보다 난생처음 듣는 한자어가 더 많았다.

애초에 유창한 영어 회화 실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아쉬울 것도 별로 없었지만 이게 장장 12년 공교육의 산실이라면 좀 낭비 아닌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눈을 쳐다보면 대화가 통한다고 하던데, 음 글쎄…… 외국인 눈을 쳐다보면 다들 내가 시비 거는 줄만 알더라. 서로 눈을 마주 보아도 내 속은 잘 모르나 보다.

지토는 오늘도 내게 말한다. 이거 하지 마, 이거 하면 인생 나락 간다, 정신 차려라, 저거 하면 그냥 끝나는 거야. 영어 공부 제대로 해, 안 그러면 외국인한테 시비 털리니까. 외국인이 말 시키니까 너는 절대 쳐다보지 마.

‘오 노우! 돈 두 댓!’






Photo by Ivan Shil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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