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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03. 2022

같은 동네 미장원 두 곳

#01 어린 유치원생의 초상

내 최초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엄마는 항상 파마약 냄새를 풍기고 다녔다.

손톱 밑은 염색약으로 거무스름했으며 언제나 손목이 아프다는 말을 배를 누르면 ‘사랑해~♬’라는 문장이 튀어나오는 곰 인형처럼 자동으로 내뱉고 다녔다.

당시 나는 엄마의 삶의 무게를 공감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당연했다. 그때 고작 유치원생이었으니까.


  

엄마는 흔한 학예회 참석도 못 했고 나를 데리러 유치원에 와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마 우리 반 선생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학부모의 얼굴은 우리 엄마뿐이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단점만 가득했었냐고 질문하면 늘 그렇듯 언제나 한쪽으로만 세상의 이치가 치우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실제로 엄마는 아침마다 내 머리를 만져주는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가게에 출근하기도 바쁜 그 시간에 나를 앉혀놓고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건 엄마의 사죄 행위였다.

삶의 최전선에 서서 온전히 자식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앞으로도 ‘비출산'으로 살아갈 내가 절대 이해 못 할 심정일 것이다.

일상의 전쟁 같은 출근과 등원으로 바쁜 그 와중에 엄마는 매일 아침 나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해줬다.

어느 날은 가볍게 땋은 머리, 어느 날은 공주처럼 왕관 쓴 것 같은 머리, 또 어느 날은 곱슬의 특징을 살린 웨이브 진 머리 등 엄마의 손을 거치면 내 머리는 단연코 우리 유치원에서 으뜸이라 말할 수 있었다. 머리 모양 하나만큼은 곧 나의 자부심이었다.



기세가 바뀐 것은 우리 반에 새로운 친구 하나가 들어오고 난 후부터였다.

친구는 만화영화 주인공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성까지 이뻐서 아직도 까먹지 않고 있는 이름 중 하나이다.

유세라.

내 이름은 지금에 와서야 이쁘단 소리를 듣지, 그때엔 특이하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서 친구의 세라라는 이름이 부러웠다.

세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외모도 만화의 주인공과 꽤 닮아있었다. 커다란 눈은 물론이고 또래보다 키까지 커서 아이들 누구나 세라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심지어 입고 오는 옷도 매일 달랐으며 옷들 하나하나가 공주 같았다. 나도 그런 세라에 대한 ‘관심 소유단’ 중 한 명이었는데 내가 먼저 다가갈 용기는 없어서 멀찍이 바라만 보며 관심 없는 채 쳐다보지도 않는 유치한 행동만 되풀이했다.

아이들이란 꽤 유치하여, 공연히 ‘유치’원에서부터 학습 활동을 시작하는 게 아니다.

그때 내 상황을 잠깐 묘사하자면, 점심시간에 밥을 잘 먹다가도 세라가 쳐다보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거나, 다른 친구들과 블록 쌓기를 하는 도중 세라가 우리에게 다가오면 나 혼자 새침하게 자리를 피하는 식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저런 성격을 고치지 못해서 썸 초기에 놓쳐버린 나의 인연은 셀 수가 없다.



새초롬하게 눈을 피하는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세라가 살갑게 내게 다가온 것은 미스터리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인데 단순히 세라의 성격이 좋았던 것일까?

세라는 사회성 없어 보이는 나의 행동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먼저 말도 걸며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런 세라를 향해 나는 로봇처럼 삐걱대고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였지만, 우리는 이내 유치원 내 공식 단짝 친구가 되었다.

세라가 왜 나를 단짝 친구로 택했는지는 모르겠다.

‘왜 택했는지’

친구 사이를 누가 택한다는 것은 앞뒤 맞지 않는 문장이지만 반대로 틀린 문장도 아니다.

세라는 문장 그대로 나를 단짝 친구로 택했다. 수많은 단짝 친구 후보들 중에 말이다.

그 후로 우리는 꽤 자주 어울려 놀았다. 하원 후에 세라 집에서 놀겠다고 엄마의 미장원으로 귀가하지 않은 적도 손가락에 꼽을 수 없다. 유치원 하원 버스를 타고 그대로 세라 집에 내려 버리는 바람에 엄마가 유치원에 나를 찾는 전화를 자주 할 정도였다.



세라 집은 우리 집과 가까운 편이었다.

내 걸음으로는 많이 걸어야 할 거리였지만 어른 걸음 수로 가늠해보자면 그냥 단순한 산책으로 치부할 길이다. 우리 집은 빌라가 모여있는 골목 사이에 있었는데 집에서 나와 여러 갈래의 작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우리 집 미장원이 보였다. 미장원을 뒤로하고 작은 골목길을 벗어나 좀 걷다 보면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곧이어 아파트 단지들이 턱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 제일 이름 있는 것은 신축 아파트였다.

아파트 이름도 텔레비전 광고에서 많이 들어봤고 외관도 멋있는 것이 우리 집 빌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 신축 아파트에 세라가 살고 있던 것이다.

내가 하도 세라네서 놀다 보니 엄마들은 서로의 집 전화번호를 알 정도였는데 어느 날 엄마가 본격적인 세라네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 세라네 엄마도 일한다고 하시던데 직업이 뭐래?


음… 미장원! 세라네 엄마도 미장원 하신다고 하던데! 세라 헤어숍!

지금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뭉뚱그려 저런 식의 대답을 내뱉었던 것 같다. 나의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그때의 내 대답보다 잔뜩 굳어진 엄마의 표정이 더 선명히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동네에 미장원은 우리 집 하나밖에 없었다.

별 크지도 않고 잔잔하게 동네 장사만으로 먹고살던 미장원이었는데 동네에 하나뿐이라 그런지 할머니들은 물론이고 대학생 언니들과 직장인이던 이모들도 방문해 머리를 볶아가곤 했다. 엄마는 그런 손님들로 인해 매번 손목이 아프다는 소리를 했었는데 말과는 다르게 손님이 많았던 달과 없었던 달은 표정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드러났다.



소소하게 미장원을 운영하며 가계에 보탬이 되던 엄마의 고민은 큰길 너머 상가에 미장원 하나가 들어서며 시작되었다.

세라 헤어숍.

그냥 동네 이름을 따서 ○○미장원이라 투박하게 이름을 지은 저의 미용실과는 달리, 세라 헤어숍은 이름부터가 고급졌다.

세라 헤어숍이 들어서고부터 엄마의 미장원에는 하나둘씩 단골손님들이 사라져 갔다.

골목에서 마주칠 때마다 단골들은 일이 너무 바빠, 학업이 너무 바빠, 같은 이유를 대며 머리를 하지 못했다고 변명했지만 그들의 달라진 헤어 스타일은 엄마에게 전혀 납득 갈 만한 이유도, 위로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엄마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져 갔다.

세라 헤어숍과 엄마의 미장원은 링 위에서 붙을 동일 체급이 되지를 못했다.

세라 헤어숍은 크기부터가 달랐다.

지금 흔하게 시내에 널린 프랜차이즈 헤어숍과는 당연히 다르지만, 그 당시 작은 동네에 있기에는 미장원의 크기가 꽤 컸다. 내부 인테리어도 화사하고 가게에 들여놓은 미용기구들 또한 신식의 것이라 젊은 언니들의 발걸음이 옮겨간 것은 당연지사였다.

가격 또한 우리 집 미장원과 별반 차이 나지 않았다.

상황이 저 지경으로 흐르니 아침에 머리를 하러 오던 할머니들 또한 한 번, 두 번씩 세라 헤어숍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 손녀가 같이 가보자캐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 본 것이여.



나는 점점 세라와 어울려 다니는 것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특별히 눈치를 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식만큼 집안의 이상한 공기를 느끼는 뛰어난 존재는 없다. 세라의 이름이 엄마를 아프게 하는 것만큼은 나도 잘 알았다. 

자주 방문하던 세라네 집도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세라네 집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인형과 희한한 장난감이 많았는데 그 많은 것을 포기한 것이다.

세라는 퍽 섭섭한 눈치였지만 나를 단짝 친구로 택해주며 베풀었던 그 큰 아량으로 이해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간다고 유치원 최고참이 됐을 무렵에 엄마와 아빠가 나를 식탁에 앉혔다.

“엄마 아빠가 할 이야기가 있어.”

“뭔데?”

“드디어 이안이가 그토록 바라던 동생이 생길 거야. 좋지? 올겨울이 오면 동생 얼굴을 볼 수 있어.”

나는 동생을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떼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방적인 통보가 어리둥절했다. 여자 동생이야, 남자 동생이야? 나 여자 동생 가지고 싶어, 동생 성별은 지금 알 수 없어, 그리고 남동생이 태어나도 이뻐해 줘야 해, 이안아. 뭐 이런 대화가 오고 가다가 부모님은 마지막에 남겨두었던 한방을 터트렸다.

“그리고 우리 이사 갈 거야.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니까 이안이 괜찮지?”

나는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보다 이사 간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러웠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인생에 이사란 없었다. 본인 집은 2년에 한 번씩 이사 간다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자랑을 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한 번도 이사해본 적 없는 시시한 아이였다. 부모님은 할 말이 더 남았는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엄마는 미장원 안 할 거야, 이안이 유치원 끝나고 나면 엄마가 집에 계속 있을 텐데, 이안이 좋지?



이사를 하고, 엄마가 집에 계속 머물고. 내게 달라진 것은 오직 저 두 개뿐이었다.

이사 간 집은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작아졌으며 엄마가 집에 있는 대신에 주말마다 먹던 치킨을 먹지 못하는 게 아쉬워졌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빌라 계단에 퍼지던 주말이 조금씩 그리워졌다.

엄마 앞에서 조심한다고 해도 가끔 어쩔 수 없이 세라 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엄마의 표정을 살피게 됐다. 그때마다 엄마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나는 엄마가 세라와 완전히 놀지 못하게 할까 봐 무서웠다. 다행히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엄마의 낙망을 어린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엄마가 동네 터를 잡고 있던 미장원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빌라, 세라네는 신축 아파트.

동네 이름을 딴 미장원과 세라 헤어숍.

나는 어른들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그해 겨울에 동생이 태어났다. 남동생이었다.

엄마의 표정은 하루하루 말라갔다. 급기야 아침마다 손이 많이 가는 내 머리를 엄마는 잘라버렸다. 전직 미용사였던 엄마라서 세라 헤어숍에 가 머리를 잘라야 하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자르기 싫다는 내 울음에 엄마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가위를 들 뿐이었다. 엄마에게 내 머리는 거추장스러운 집안일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 머리를 자른 날엔 방에 누워 잠을 설쳤다. 두려움으로 밤을 보낸다는 문장을 아이가 깨우칠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체험한 그 어려운 문장은 나를 새로운 시험에 빠지게 했다. 다음 날 가게 될 유치원이 숨 막히도록 무서웠다.

짓궂은 사내아이들은 내 머리를 보고 남자애라고 손가락질했다. 엄마가 내 머리를 단발이 아닌 짧은 더벅머리로 잘라버린 것이다. 아이들의 놀림에도 꿋꿋하게 참았던 내 눈물은 세라를 보자 터져 나왔다. 눈물의 의미는 서러움과 껄끄러움, 그리고 창피함이 미묘하게 뒤섞여있었다.

세라는 여전히 이쁜 긴 머리였다. 나는 이제 진짜로 세라와 어울리지 못할 것을 알았다. 세라는 여전히 공주님 같지만 나는 변했으므로.



유치원 졸업사진에 박제되어있는 어린 시절의 나는 짧게 깎아져 있는 머리 모양을 하고선 웃고 있다. 사진 찍는다고 엄마가 나름 모양을 내줬지만 내 눈엔 여전히 촌스러워 보인다.

그 후로 난 중학교 입학 전까지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다. 나는 웃고 있는 내 최초의 졸업사진과 아직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다행히 이사간 집은 전에 살던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초등학교는 동네에 있는 곳으로 배정되었다. 세라와 나는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뭐 같은 반이 되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펼쳐졌으면 좋으련만 당연히 그런 소설 같은 이야기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 자란 지금도 나는 세라가 밉지 않다. 엄마의 심정이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도 당연했다. 그때 나는 고작 유치원생이었으니까.



지금에 와서야 다시 미용하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면 엄마는 무슨 쓸데없는 질문을 하냐는 듯한 웃음을 짓고는 한다.


- 그때 너 동생 임신하고 나서는 손이 간지러웠어. 그 동네에 크게 미장원이 생기고 난 후에 우리 미장원이 쫄딱 망하긴 했어도 난 평생 미용으로 일을 했으니까 그대로 손을 놓기에는 아쉬웠지. 그냥 애들 조금만 더 키워놓고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는데 1년이 10년 되었고, 10년이 20년 됐네.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인생이 있듯이 엄마에게는 엄마의 인생이 있고 나 또한 나만의 인생이 있다.

이십여 년 전의 어린 유치원생은 그만의 인생을 힘껏 견디었을 뿐이다.






Photo by Nick Fewing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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