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열린 Oct 03. 2022

프롤로그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아빠는 엄마를 구석 자리에 절대 앉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임산부가 구석 자리에 앉으면 태어날 아이가 평생 구석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미신이지만 그 때문에 엄마는 친구와의 만남이건 가족과의 모임이건 구석 자리는 항상 피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재미있게도 우리 집은 원래 미신을 불신하는 집안이다.




기억 속의 어린 나는 천재라는 칭찬을 귀에 닳도록 들으며 자랐다.

사람이 칭찬에 파묻히면 그 단어에 매몰되어 수영하는 시늉을 하게 된다. 수영할 줄도 모르면서.

착각에서 벗어난 건 중학교 수학에서 함수를 처음 접하고 난 후였다. 난 지금도 수학에 약하다.

그 무렵 어른들은 판에 박힌 말로 여러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해주었다.

‘너는 남달라, 너는 세상에서 하나뿐이야. 너는 정말로 특별해.’

세상이 진짜로 나를 향해 돌아가는 줄 알았다.

교복을 벗은 현재,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깨달았다.


    

지금도 스스로의 평범함에 분개하다 못해 자아분열을 한다.

그래, 난 평범하지, 남들보다 뛰어난 게 없어, 내가 진짜 평범하다고? 아냐, 난 특별하지만 빛이 나기엔 나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특별한 사람들이 아주 조금 더 많을 뿐이야, 혼자만의 비뚠 자아분열은 아주 잠깐의 위안을 안겨주기도 한다. 잠시뿐인 위로는 곧이어 추상적인 대상에게 비난의 손가락을 돌리는 계기도 함께 제공해줄 뿐이다.

재수 없게 숫자가 많이 분포된 내 출생연도의 표를 볼 때마다 어처구니없지만 본인 생년에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출생률이 낮다는 지금 태어났으면 나도 한 끗발 했을 수도 있는데, 라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덧붙여서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 다가올 눈부신 순간을 위하여 매 순간 너절하게 살아낸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잔잔하게, 누군가 돌을 던지면 잠시 물결이 생기다마는 얕은 개울 같은 인생이다.

그렇다면 면접관들이 내게 던지는 '가장 힘든 경험의 순간'은 삶의 치열한 순간이 없는 바로 지금인 것인가.

나는 누추한 결핍 따위는 겪어보지도 못했다.



타인도 나와 다르지 않다고 잠시 고대해본다.

그렇다면 이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특징 없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지.



엄마가 구석 자리를 피한 것이 무색하게, 나는 특징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