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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03. 2022

저녁 8시, 할인 30%

#04 궁색한 자는 이렇게 말했다

동남아에 방문했을 때 나를 제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호객행위도 더위도 아닌 스콜성 소나기였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세찬 소나기는 내 기분을 망치기 위해 신이 샤워기 헤드로 쏘아대는 물줄기 같았는데 한국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가 맹렬했다. 창문 밖 쨍쨍한 아침은 우산의 무용을 보증해주지 못했다. 우산 없이 거리를 나섰다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맹수의 침에 침수돼 쫄딱 젖은 채로 귀소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학창 시절, 가계의 위태로움은 마치 피할 수 없었던 스콜성 소나기처럼 그렇게 우리 집을 덮쳐왔다. 동네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엄마의 미장원과 고만고만 먹고살 만큼 가져오던 아빠의 월급은, 부자처럼은 아니더라도 주에 한 번은 외식하게끔 우리를 먹여주었다.

가정의 긴축정책은 엄마의 실직과 동생의 출생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자식의 입장에서 조금 변명을 보태자면 부모님이 평소에 소나기를 대비하여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준비했던 우산의 크기가 우리를 덮쳐오는 빗발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작은 크기였을 뿐이다.



원래 거주하던 집보다 한층 더 작아진 집으로 이사를 ‘당한’ 내가 제일 먼저 겪었던 고통은 ‘치킨 금지’였다.

그 당시 나를 지탱해주었던 작은 고유 의식이란 것이 있었는데 그건 주말마다 치킨집에 전화 걸어 가게 사장님과 거창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내가 유일하게 큰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곳은 전화기 안이었다. 그것도 상대방이 단골 가게인 치킨집 사장님이었을 때만 가능했다. 사장님은 내가 매번 뱉는 메뉴를 알고 있어도 끝까지 나의 말을 경청해주었다. 심지어 치킨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후라이드 한 마리요, 아! 저 이번 주에 운동회 했어요!’ 같은 비루한 대사를 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저럴 때마다 엄마나 아빠는 질색하며 전화를 뺏어 사과했지만, 사장님은 확실히 비위 좋은 자영업자였다. 허허, 괜찮습니다.


 

매주 먹을 수 있었던 치킨을 금지당하자 내 마음은 조금씩 삐뚤어져 갔다. 유치원 하원 버스는 엄마의 미장원이 아닌 작아진 우리 집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는데 부엌에서 나를 반겨주는 엄마보다 주말에 듣지 못하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더 간절해졌다. 엄마가 튀겨주는 닭은 사장님의 양념 맛을 따라오지 못했다. 비꼬인 어린 마음은 곧 엄마에게 돌을 던져버렸다.

“엄마, 미장원 왜 안 나가? 나 엄마가 집에 있는 것보다 토요일에 치킨 먹었던 게 더 좋아.”

엄마는 그저 깔깔 웃을 뿐이었다. 본인의 조금 더 노력한다는 말은 내게 별 와닿지도 않았다.

짜기만 짰던 그날의 치킨은 밥보다 물배를 채워주기 충분했는데, 화장실에 가기 위해 어스름한 새벽을 걷었던 나는 식탁에 앉아 있던 귀신을 보고 말았다. 불 꺼진 집안은 매우 고요했다. 거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만이 부엌에 앉아 있는 존재를 분별하게 해주었다. 귀신은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늘어뜨리고 식탁에 엎드려 있었다. 공포가 나를 강타해 소변을 앉은 채로 지릴 뻔했다. 옆에 누운 엄마를 깨우려 손을 뻗어봤지만 자리는 식어있었다. 귀신의 어깨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야가 어두워 대부분이 불분명했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점은, 귀신은 나와 달리 수분 배출을 아래가 아닌 눈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귀신도 저녁으로 먹었던 치킨이 짰었나 보다.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살림 밑천으로 탈바꿈한 장녀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똑같이 철없었고 똑같이 떼썼으며 그저 한순간 잘려버린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는, 하얗게 질린 아이였을 뿐이다.

다만 지워지지 않는 엄마의 절절한 문장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껴라’였다. 

‘아껴라’는 우리 집에서 엄마가 외치는 만능 주문처럼 사용됐다. 거실 불이 켜져 있으면 화장실 불을 끈 채로 손을 씻어야 했고, 냉장고 안을 궁금해하는 나의 호기심은 엄마에게 진작 차단당했다. 특히 한여름에 물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자주 열 때면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치킨집 사장님과의 대화는 당연히 어불성설이었다.

그래도 우리 집이 손가락을 빨며 버텨낸 것은 아니었다. 사춘기에는 작은 집이 부끄러웠고 적은 용돈으로 인해 떡볶이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짜증 났지만 뒤돌아보면 배를 움켜쥐고 잠들었던 적은 없었다. 이 정도 가난이야 흔하디흔한 클리셰일뿐 생지옥 축에도 못 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그때 부모님의 심정은 알 수 없다.



스스로 밥 값할 수 있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의 만능 주문은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뼛속 깊이 인두로 지져진 주문을 지금에 와서야 지우려고 노력했지만 어릴 때 당한 세뇌는 좀처럼 씻겨지지 않는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친구들을 기다리기 위해 카페에 가기보다 역전에 앉아 멍 때리는 것이 훨씬 익숙하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좋은 물건보다 ‘낮은 가격순’으로 정렬 버튼 누르는 것이 내 오랜 습관이다.

심지어 최근 겪은 일이 있다. 매체에서는 입을 모아 올여름이 역대 최고 기온이라고 속보를 내놓았는데 나는 그 심한 폭염 한가운데에서 택시비를 아끼려 집에서 역까지 편도 30분의 거리를 두 발로 걸었다. 겨우 역에 도착해 더위와 땀으로 숨을 헐떡이자니 택시비 3,800원을 아끼려다가 링거 비용으로 돈이 더 나갈 뻔한 상황이었다는 게 의식되기 시작했다. 어째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구질구질 궁상맞은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런 나에게 저녁 8시는 최적의 시간이다. 우리 동네에는 큰 마트가 하나 있는데 오후 11시에 문을 닫는 대형마트였다. 폐장 시간이 다가오면 농산, 축산, 수산 심지어 가공식품까지 파는 지하 1층은 내게 그야말로 환희의 장소였다. 그날 다 팔지 못하고 남은 떨이들 위에 부착된 빨간색 세일 스티커는 언제나 나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할인 30%. 볼수록 아름다운 글자다. 동선상 집으로 바로 퇴근하지 않고 마트에 들르면 땅에 버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서 마트로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 최적의 시간인 8시를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가서도 늦게 가서도 안 된다. 8시는 최적의 시간이다. 너무 일찍 가면 아직 세일 스티커가 붙지 않은 상품들이 많아서 하염없이 그 공간을 배회해야 할 수도 있고 너무 늦게 가면 내가 원하는 음식은 이미 다른 경쟁자 손에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

난 항상 그 시간에 맞춰서 마트 쇼핑을 간다. 주말 낮에 무언갈 먹고 싶어도 참는 것은 내게 문제도 아니었다.



“아가씨는 이 시간쯤에만 얼굴 볼 수 있네?”

“……네?”

내게 문제 되지 않았던 그 상황이 바뀐 것은 시식 코너 이모님의 알은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마트에 자주 가면 시식 코너에서 몇몇 얼굴들을 눈에 익숙하게 입력시키게 되는데 서로 눈인사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서 물건을 구입할 때 아니면 언제나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집에서 먹어야 할 만두가 다 떨어져 만두 앞을 서성이던 그날의 나에게 이모님은 결국 말을 걸고 마셨다. 나의 되묻기에 이모님은 항상 지금쯤 퇴근하냐는 말과 함께 만두 영업을 시작하셨는데 이미 내 속은 시끄러워졌다.

나의 꼬아 듣기 신공은 여감 없이 발휘되었다. 제 발 저렸던 것이다. 퇴근은 한참 전에 했다. 단지 천 원이라도 아끼려 동선을 꼬고 꼬아 이 시간에 마트를 찾아온 것이다. 천 원을 아끼려 이 시간에 마트를 찾든 아니면 더 일찍 마트를 찾든 내게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스스로 고되다고. 나도 가끔은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카페에 앉아 단지 10분이라도 더 편하게 친구를 기다리고 싶었고 가격 따위 상관없이 더 질 좋아 보이는 물건을 구입하고 싶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날이나 살을 베어버릴 정도의 바람이 부는 날에는 택시를 타고 싶은 건 당연했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유별나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아끼는 건 좋지만 스스로 옭매지 말라고 덧붙였다. 친구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서 단어를 포장했지만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네 인생은 궁해 보여, 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나는 가난이 싫다. 가난해서 나 자신보다 내가 타인에게 보내야 하는 대접에 더 익숙한 것이 싫다. 가난해서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나눠 들어야 했던 짐을 지금도 내려놓지 못한 것이 싫다. 가난해서 내게 익숙한 시간대가 8시인 것도 싫다.

저녁 8시, 할인 30%.

어린 시절 너무나 자주 들었던 만능 주문이 풀리기엔 나는 아직도 자라지 못했다.






Photo by Justin Li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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