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기는 할까?
튀는 아이였다. 여섯 살의 어느 날 수와 글과 시계가 함께 이해됐다. 세계는 어마했고 나는 작았다. 새끼손가락 약속과 단정한 규칙을 이해했다. 그게 세계인걸 그냥 알았다. 착한 아이인척 하면 된다.
세상은 기억할 것 투성이다
최초의 선물은 손목시계였다. 시계는 모두 왼쪽에 있다. 손목시계를 오른 손목에 걸었다. 본능적으로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익숙에 몰입한다. 몰입하면 낯설지 않다. 자연스럽다.
세상은 기억할 것 투성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착하지 않은 아이가 된다. 엄마 수첩의 숫자와 글자를 보며 생각했다. 기억하려고 기록한다. 수첩을 잃어버리면 수첩은 기억을 갖고 도망가는 것이 아닐까? 이상하고, 자연스럽지 않다.
기억하기 위한 서랍이 필요하다. 머리 속 서랍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서랍에 기억을 넣으려고 동작을 만들었다. 눈으로 숫자를 보고 문장을 본다. 고개를 든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러면 수와 문장이 저장되었다.
4월 15일, 4월 16일, 4월 17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께 전화로 여쭤본다. 재작년에도 여쭤보고 작년에도 여쭤봤다. 이 순간도 기억나지 않는다. 또 여쭤볼 수밖에 없다. 고개를 들어 눈을 감고 기억을 꺼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인 내게 반항을 한 것이다.
여덟 살 여름, 친한 가족끼리 장호해수욕장에 갔다. 남자 어른은 술을 드신다. 수영을 못하는 엄마는 튜브를 가지고 바다에 가신다. 바다에 빠지는 엄마를 보았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는 칼 루이스처럼 바다로 뛰어들었다. 너무 빨라 슬로비디오 같다. 단숨에 엄마를 구하고 없던 일처럼 다시 술을 드신다. 크고, 자연스럽다.
열 살 가을,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초등학교 뒤 계단논으로 메뚜기를 잡으러 간다. 푸드덕 나는 듯 뛰는 논 메뚜기는 무섭다. 촌놈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곤충이나 개구리는 겁났다. 만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메뚜기를 받아 병에 넣어야 한다. 손이 떨려 자꾸 놓친다. 어지러워 기절할 것 같지만 참는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바라본다. 잡지 못하면 사내가 아니라는 눈빛으로. 혼나는 일은 무섭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더 두렵다. 메뚜기 따위 잡지 못해도 이미 남자인데.
집에 돌아와 아버지는 메뚜기를 볶는다. 혼나는 게 무서워 입에 넣는다. 눈을 감는다. 메뚜기의 몸통이 아삭 씹힐 때 내 심장도 아작 씹힌다. 식도로 넘긴 메뚜기는 소화액에 녹을 리 없다. 40년이 지나도 췌장 어디쯤 숨어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성적표를 보여드린 적이 없다. 하바드대학의 킹스필드와 싸우는 스무 살 대학생 하트처럼 성적표를 받아 비행기를 만들어 창밖으로 날렸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다. 그저 나는 공부 잘하는 아들이다. 착한 아들이었다.
고3, 추석 전 일요일이다. 밤새 기차로 시골집에 간다. 아버지는 일찍 가게에 나가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다. 갓 출소한 죄수 같다. 메뚜기를 잡던 기억이 떠올랐다. 심장이 조이는 답답한 공포이다.
장사를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런데 머리를 하얗게 미셨다. 내게 아무 말씀하시지 않았다.
"반항은 아들인 제가 하는 것이라고요!!!!" 나는 크게 외쳤지만 그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인 내게 반항을 한 것이다. 힘이 훨씬 센 강자면서 내 몫의 반항까지 빼앗았다. 모순이고 비문이라고? 그것은 분명한 반항이었다. 아버지는 마흔다섯이었다.
아버지는,
반경 5m 절대 공간을 지니셨다
내 아버지는,
공기를 압축시키는 능력을 지닌 분이다. 온도는 고정이다. 반경 5m 절대 공간을 지니셨다. 무겁고 서늘한 공기가 공간을 지배한다. 다가가면 호흡이 가빠진다. 가족은 빙빙 돌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침묵과 소리가 두려웠다. 아버지의 역정은 천재지변인 듯싶었다. 아버지가 화를 내기 시작하면 어린 나는 엄마의 팔을 잡고 속삭였다. 가만 계시라고. 그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2009년 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당신의 의지로 행하신 죽음이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기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올해도 어머니께 여쭤봐야 할 것 같다.
비로소 나는 아들의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아버지를 보내드리지 않는 것은 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왜 놓지 못하는 것일까.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나는 내가 고3이던 그 해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았다. 점점 나를 닮아가는 아들은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쯤 아버지의 기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좋은 기억도 행복한 기억도 많다. 동생과 달리 내게는 많은 정을 주신 당신이다. 행복하고 그리운 기억은 소금처럼 스며들어 축축하다. 다 마르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바짝 햇빛과 바람에 말린다. 빛나는 결정체의 하얀 소금으로 환원되길 기다린다. 소금을 들고 고개를 든다. 눈을 감는다. 뽀드득 행복하고 그리운 기억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기일을 기억하게 된다. 비로소 나는 아들의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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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