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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웨인 Jan 24. 2018

담배, 그 지랄 같은 인연

고백


끊지 못하면 목이 잘릴지 모른다


담배가 떨어졌다. 편의점에 들렀다. 담배가 놓인 번쩍거리는 진열대를 노려보았다. 고집스레 피운 국산 담배 디스는 없다. 끊지 못하면 목이 잘릴지 모른다. 기요틴에 엉거주춤 엎어진 기분이다. 디스 대신 니코틴 함량 극강의 말보로 레드 하드팩을 샀다.


금연은 뇌의 시상하부에 저장되지 않은 정보였다. "끊는다"라는 생각을 지금 최초로 했다. 술은 끊어도 담배는 끊지 않았다. 주위에서 걱정과 불편을 토로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담배는 저장 창고였다. 기억을 버릴 수는 없었다.


잠수교 옆 어디, 혼자 살던 15살 무렵 담배를 피웠다. 치기도 가오도 아닌 외로움 때문이었다. 법규와 관습, 죄의식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메마른 기침과 현기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견뎌냈다. 여린 정신과 불안을 토닥거려준 의리 있는 놈이었다. 중독이 아니었다.



담배 피우는 일본 아이를 잡아갈 한국 경찰은 없었다.


고2, 하교 후 친구들과 명동에 갔다. 그땐 명동에 나가야만 하루가 마감되었다. 누군가와 섞여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선호텔 앞에서부터 담배를 물었다. 광장의 공기와 담배 연기가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정복 경찰이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어리게 보여서일까. 무리 중에 나는 더욱 어려 보였다.


"어이~ 학생!! 신분증 좀 꺼내봐!"


경찰이 강압적인 어투로 무섭게 말했다. 불심 검문이 아무렇지 않던 시절이다. 나는 편안하게 대답했다. 이미 준비된 시나리오가 있었다.


"なんですか? 枯葉散る夕暮れは 來る日の寒さをものがたり......"

"어... 어... 음... 일본 사람인가 보네."


일본 애들도 아닌, 일본 사람이라고? 머뭇거리던 경찰이 돌아가자 우린 웃었다. 난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경찰에게 말한 일본어는 노래 가사였다. 1972년 발표된 이쯔와 마유미의 '고이비또요'라는 노래였다. 나는 [가레하찌루 유우쿠레와...] 라고 시작하는 노래를 통째로 암기하고 있었다.


외국인이 드문 시절이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을 몇 차례 더 만났다. 그때마다 '블루라이또 요코하마' 또는 곤도 마사이코의 '긴기라기니' 같은 노래 가사를 대화하듯 말했다. 담배 피우는 일본 아이를 잡아갈 한국 경찰은 없었다. 그 순간마다 엄석대가 된 기분이었다.


목이 잘리더라도 나는, 담배를 피울 것이다.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늘 언젠가의 일탈을 꿈꿨다. 나는 내가 싫었다. 예상된 일탈은 매력적이었다. "돌아온 후의 나는 다를 거야"라는 기대는 날마다 견디게 했다. 어쩌면 차마 떠나지 못한,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일탈을, 꿈만 꾸며 반복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내 모습에 매일 두근거렸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그래, 그랬을지 모른다. 지랄 투성일지 모를 지난 시절을 잊은 척 지금까지 왔다. 어쩌면 눈썹이 희게 샌 아직도 일탈을 꿈꾸는 것일까. 눈앞에 털지 못한 지랄이 쌓여있다. 다 털어야 간다니 짐이다.


"어느 때, 어느 누구와 함께 있어도, 나의 모든 감정에 대뜸 영향을 미치는 고독이라는 일탈을 극복하기는 불가능했다. 일탈을 비밀스러운 곳으로 옮겨가면 그곳에 고독이 내려앉는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의 한 문장이다. 목이  잘리더라도 나는, 담배를 끊지 않을 것이다.


.


담배는 끊어낼 수 없는 대상이다. 그렇지만 그가 끊으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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