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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웨인 Jan 27. 2018

아들에게 쓴 편지

전하지 못한.

아침에 집에 들어가니 이상하다. 낮은 조도로 켜놓은 캔들은 그대로이다. 책상 위 컴퓨터도 켜져 있다. 어젯밤 나가기 전 상태로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들어온 느낌이다. 방 공기가 다르다. 누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밤새 문이 열린 걸까. 잠금장치는 멀쩡하다.


아들이 준 노트북도 침대 밑에 그대로 있다. 값나가는 물건이 있을 리 없고 없어진 것도 없다. 옷도 벗지 않고 방을 서성였다. 욕실에 가서야 이유를 알았다. 창문이 열려있고 보일러가 섰다. 밤새 얼었나 보다.


겨울이 되고 온도 설정을 15°로 유지했다. 춥지만 개의치 않았다.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을 덮으면 견딜만했다. 따뜻하고 안온하게 지내면 뭔가 불편하다. 감기에 걸려도 설정을 바꾸지 않았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탈출하려고 땅굴을 판다거나, 시험 전 커닝 페이퍼를 쓴다거나, 허락치 않은, 도의적으로 금한 일을 하는 것 같다. "치러야 할 죗값을 수행하라." 상고 없는 판결을 받은 것 같다. 왜 꼭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 지낸다.


춥고 썰렁한 방에 적응했다. 낮은 온도지만 그나마 돌던 보일러가 멈췄다. 더 가혹한 냉기가 아직 있구나. 고치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기장판을 켜고 누웠다. 이불을 덮어도 코가 시리다. 코끝이 시린데 눈물이 핑 돈다. 코와 눈이 붙어있나 보다.


새벽을 골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할 말은 많지만 다 쓸 수는 없다. 여백은 짧고 잉크도 부족하다. 마음을 아들이 알아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군대에 가면 누구의 편지라도 기쁘게 받을 테니. 백지도 봉투도 넉넉히 준비했다. 그 기쁨을 매일 주면 좋겠다.


아들 이름을 쓰고 멈췄다.  써 내려가지 못했다. 핸드폰을 뒤져 훈련소 퇴소할 때 찍은 사진을 봤다. 함께 찍은 단 한 장의 사진. 아들의 말이 생각난다. "아빠, 안녕?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여기 너무 힘들어, 아빠는 잘 지냈어?"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 음악 하는 사람 같아."

"그래?"


웃고 넘겼다. 머리가 길어 그런가 보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다. 운동복 바지, 검은 롱 패딩, 머리도 수염도 깎지 않았다. 새벽에 본 서울역의 노숙자 같다. 일하다 말고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진주에 왔다. 아들이 창피해하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그제야 수많은 이등병 곁의 부모들이 보였다. 다들 꽃다발을 들고 잘 차려입었다. 마치 학교 졸업식에 온 것 같다. 난 그저 아들을 보러 온 건데. 뭔가 스스로 내버려두고 있는 걸까. 사진 속 아들은 웃지 않는다. 군인이 아니고 아직 아이 같다.


세상 누구도 갖지 못한 자식을 나만 가진 게 아닐 텐데 널 보면 왜 웃음이 나지 않고 울컥한 걸까. 아들에게 무슨 죄를 그리 지은 걸까. 편지를 더 써 내려가지 못하고 잘못한 기억만 장부에 기재한다. 잊지 않으려 덧칠하고 또 쓴다.


평생 아들을 단 한 번 때렸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너무 어려서 기억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몸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겠지. 셋이 앉은뱅이 밥상에서 저녁을 먹는데, 아마 6살 정도 된 거 같다. 아이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들의 뺨을 때렸다.


놀라서인지 아들은 울지도 않았다. 나를 보던 동그란 눈과 뺨에 남은 손자국. 너무 놀라, 말도 못 하고 경멸하듯 날 보던 네 엄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다들 조용했다. 아마 그때 악마가 된 것 같다. 군인이 된 아들이 아직도 아이 같은데 6살 아이에게 손찌검하다니.


편지를 쓰는데 좋았던 추억보다 그 기억이 떠올랐다. 죽을 것 같이 괴롭다. 후회하며 살지 않았지만 돌이키고 싶은 순간은 있다. 누군가 나타나 남은 수명을 담보로 단 한 가지 원하는 걸 바꾸게 해줄 수 있다면 주저 없이 계약하겠다.


"금수저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학생 때로 돌아가 다시 공부하고 싶습니다."

"엄청난 금액의 로또에 당첨되고 싶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손찌검 대신 아들에게 애정 받는 아빠가 되고 싶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는 변명은 하기 싫다. 조금은 괜찮은 아빠가 되고 싶다.


죽어도 못 잊을 그때의 광경을 지우고 싶다. 지워지지 않을 걸 안다. 돌아가지 못할 거다. 그래서 참 많이 아프다. 운다고 지워지지 않겠지. 눈시울이 뜨거워도 참는다. 눌러서 한 줄 한 줄 편지를 쓴다. 내용은 별것 없다. 누군가에게 온 편지든 중요치 않다. 하루를 동기들과 함께 마무리하며 편지가 왔다는 기쁨만 느끼면 좋겠다.


아들의 할머니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할아버지께도 받았을지 모른다. 받은 걸 전해주지 못했다. 전달만 하면 되는 일을 뭐가 어렵다고 못 했을까. 날이 풀리면 보일러는 녹을 거다. 날이 풀리면 머리도 자르고 멋도 내고 절뚝거리지도 않을 거다. 아들의 "울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다. 편지는 한 장만 썼다.


편지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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