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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웨인 Jan 30. 2018

고통①

아프다는 말은 아프지 않다.

십자 회랑 끝의 형광등이 차다. 눈에 닿을 듯 시리다. 수술용 침대는 작다. 몸이 다 실릴지 의심이 간다. 어린 의사의 가운 끝자락을 본다. 긴장 없는 반복과 권태가 묻어있다. 마스크와 비마스크 사이, 의사와 환자 사이 동질감은 없다. 내게로만 열린 공포를 마주한다.

수술은 1시 예정이었다. 2시 10분에 호출이 왔다. 배려 없는 늦어짐에 70cc의 두려움이 추가된다. 2시 30분, 마취를 한다. 새우처럼 구부려 척추마취를 한다. 의식이 남아있다. 헤집어질 준비를 한다. 알 수 없는 과정은 침묵만 허용한다. 잡아 줄 손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잡았다. 하반신은 사라지고 정신만이 남는다. 비현실의 온도는 -2° 쯤 서늘하다.

수술은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다. 친절한 목차 따위 없다. "중간에 깨지 않도록 죽여주세요." 몽롱한 채 의사에게 애원했다. "네, 알겠습니다. 20mg 주세요." 수술용 푸른 천이 가슴을 가로질러 덮인다. 살인지 뼈인지 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의식이 죽지 않았다. "죽여달라고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꿈을 꾸는 걸까. 결박의 세계는 비현실처럼 불투명하다.


알람이 울리듯 하반신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딘가요?"

"회복실입니다."

"몇 시예요?"

"10시 10분입니다."

"이렇게 아픈 것이 정상인가요?"

"진통제 놔 드렸어요."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은 알루미늄 회복실에 덜렁 놓여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입을 벌려 말들을 뱉어냈다. 뱉지 않으면 아픔에 잡아먹힐 것 같다. 바짝 쫀 내가 나 같지 않다.

왼팔에 매달린 주사 라인을 본다. 수혈팩, 수액, 진통제, 무통주사, 그리고 헤모박, 폴리. 알루미늄 방에서 고통과 맞선다. 마스크를 쓴 연두색 남자가 들어왔다. 침대는 덜컹거리며 백색 회랑을 지난다. 다리와 팔이 이동 침대를 벗어난다. 마스크의 남자는 침대를 끌면서 핸드폰을 본다. 욕이 나올 것 같다. 일상과 고통의 간격을 본다.

통로를 지나며 반쯤 열린 문에 폴대가 부딪혔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틀어 왼팔의 바늘을 감쌌다. 마스크는 아직 핸드폰을 본다. 나는 수직의 폴대를 본다. 튕겨 나간 수액이, 혈액팩이 터진다. 누구 것인지 모를 검붉은 피를 뒤집어썼다. 회랑 아래 격자 바닥이 붉게 물든다. 당황했을까. 마스크의 남자는 떨기 시작한다. 나는 물들여진 고통에 떤다. 아프다는 말은 아프지 않다.

.

도대체 내게, 누가? 왜? 그러는 걸까? 네 이름을 악물고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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