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놀이터 하나 있었어
한가한 석양을 보러 그곳까지 가려면
배부른 아내가 밟아야 하는 계단이 구불구불 육십 개
설익은 지갑이 군침만 흘려야 했던 구멍가게가 두 개
사연에 물든 옷들 업고 일광욕 저만 즐기던 옥상이 열 채
쇠붙이 살갗 벌겋게 익힌 자가용들이 수십 대
땅따먹기 말 같은 쓰레기 봉지가 또 수십 개
그 안에 우리만 있는 듯한 신혼집이 하나 있었어
조물주 외에는 아무도 모를 듯한 아득한 높이에
동사무소 기록도 잊어버린 듯한 가난한 산등성
우리가 손잡고 문을 나서면
새삼스럽게 세상이 주변에 있었다고 알려주던
시끄럽고 좁아 끈끈하도록 가깝던 마을이 하나 있었어
손잡고 걸으면 꽉 차던 골목길 끝에
언덕 위 놀이터 하나 있었어
그곳에 너와 내가 앉으면
저녁 밥솥 김 같은 석양이 가까이 내려앉고
방금 저 아래 종점에서 내린 사람들이 샛길을 타고
한 걸음 한 걸음 저녁 하늘처럼 붉어지며 올라오는
심장 소리 가득한 놀이터가 하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