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게 포장된 택배가
문 앞에 툭
누군가 던져놓은 모양새가
소포 상자 해진 껍질들과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발신인 이름이 읽히기도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글씨체
난 대번에 보낸 사람을 알게 되었고
포장과 글씨에서 우러나오는
그를 알아봤다는 것에
다 뜯어버린 연말의 일력처럼 휑한
우리의 지금 자리들을 둘러보았다
그 글씨들에선 젊어서부터 꼬장꼬장했던
그의 높은 자존심들과
좁은 방에서 열심히 성경을 베꼈던
가난한 신학생의 흔적과
그 가난을 혼자 이기겠다고
성경 밖으로 뛰쳐나왔던 젊은 아빠의
수그러진 세상살이가 읽힌다
70세 노인은 지금도 공돈이 생기면
40세 아들한테 전화를 한다
뭔가를 쥐어주고 던져주고 툭
뒤돌아서길 좋아하는 그의 글씨엔
여전히 세상을 혼자 사는 고달픔이
한사코 구조를 거절하는
고집스러운 어른의 이상처럼 배어있다
나도 나의 펜을 들어 글씨를 쓴다
그가 그토록 튼튼히 포장해 놓고 싶어 했던
아들의 삶을 꾹꾹 눌러
언젠가 그의 발치에 툭
떨어질지 모르는
그의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