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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n 10. 2023

퇴근 겸 출근


나에게 퇴근이란, 아내와 함께 하는 삶으로 떠나는 '출근'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간의 양만 놓고 보면 가장 중요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어떤 것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보내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은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감옥살이를 오래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옥중생활이 그만큼 소중한 것일까? 연애를 10년 동안 한 커플이라고 해서, 서로의 존재에 대해 그만큼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오전 7시 반,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집에서 나선다.

그리고 다시 오후 8시,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일'을 위해 보낸다.

나에게 허락된 아내와의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이다.

어딘가 수상쩍어보인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아내와 나누는 대화,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인데, 

가장 소중한 것에 가장 적은 시간을 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보자.

아내와 나누는 대화의 소재 중 상당수는 또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

믿을 수가 없다. 내 손에서 나오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이 나와버렸다.

조금 전까지, 바로 윗 문단에서만 해도 나는 일을 내 삶을 농락하는 협잡꾼 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직장에서-

팀원과 나눈 대화 중 느낀 점들,

일을 하며 겪은 어려움들,

오늘 하루 내가 개선한 것들...

내가 그토록 소중하지 않다고 여겨왔던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역설적으로 아내와의 소중한 시간과 대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어주고있던 것이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써놓고 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사실 오늘 일기로 이런 내용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팀장님과 나눈 대화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그만 계획에서 벗어나버렸다.

내가 이 글의 초반부에 밝히려고 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녁마다 아내와 동네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내 하루와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는데, 이미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던 것들을 다시 일기에 쓰려니 뭔가 중복되는 작업을 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즉, 일기 쓰기를 통해 노렸던 효과를 이미  아내와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아내는 나에게 있어 코치이자, 상담사이자, 선생이자, 친구이자, 동료이자, 배우자이자, 동반자이자, 멘토이자, 선배이자, 혹은 그 어떤 것이다.


-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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