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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n 18. 2023

짜증나는 플로깅

23.06.18 일요일

일요일 밤 10시다. 하루 종일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 내 눈은 반쯤 감길락말락 하고 있다.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한 뒤, 인견으로 만들어진 아내의 반바지를 입고 쇼파에 거의 눕듯이 기댄 채 「저널 치료」라는 책을 읽었다. 나는 보통 '씻기'를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는 습관이 있는데, 이렇게 미리 씻고 쇼파에 거의 누운 자세로 책을 보는 것이 이토록 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줄 줄이야 ! 이보다 더 황홀한 일요일의 마무리는 없을 것 같다.


오늘은 도서관을 무려 2군데나 다녀왔다. 하나는 수원에 위치한 <서수원 도서관>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자주 가는 <군포시 중앙도서관>이다. 지금은 절판된 제럴드 와인버그의 책 「컨설팅의 비밀」은 군포시 관내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옆 동네인 수원시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았고, 다행히 있었다 ! 그렇게 가까스로 대출한지 벌써 2달이 다 되어간다. 2달은 넘겼나? 그건 잘 모르겠다. 책에 대한 미련이 게속 남아 스캔을 좀 떠놔야지 생각하다가 반납을 미룬 것이 벌써 2달이나 되어버린 것이다 ! 그래고 vflat 이라는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어플을 알게 되어 어제 소장용 스캔본을 만들어두었다. 저널 쓰기에 관심이 생겨 관련 도서를 찾아보았고, 이번에도 역시 군포에는 없었다. 군포의 소장력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서수원 도서관은 수원 시내에 있는 도서관 중 우리 집과 가장 가까운 축에 속하는데, 소장하고 있는 책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 같다. 저널 쓰기에 관한 핵심 서적 2권이 모두 서수원 도서관에 비치되어있었다.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 「컨설팅의 비밀」의 반납하면서 동시에 저널 쓰기에 관한 책 2권도 대출하였다.

그 다음 행선지는 군포시 중앙도서관이었다. 이 곳에도 역시 반납할 책이 2권 있었다. 어제 잠을 10시간 가까이 자버린 탓에 오늘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중앙도서관 옆에 붙어있는 수리산에 잠깐 올라갔다오자고 아내에게 제안하였다. 아내는 역으로 '플로깅'을 할 것을 내게 제안하였다. 나는 좀 떨떠름했지만 마지못해 수긍하였다.


등산 초반에는 내가 쓰레기를 주어주기도 하고, 또 어디에 있는지 쓰레기들의 위치를 손가락을 가리켜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산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것에 짜증이 나고 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왜 아내를 위해 내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가? 나도 내 리듬과 페이스대로 등산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사실 나는 가끔 아내가 플로깅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유별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한때 나도 아내의 플로깅에 동참한 적도 있었는데, 그렇게 내가 원할 땐 나도 열심히 참여한다. 그런데 오늘처럼 플로깅에 별 뜻이 안 생길 때는 그냥 등산하며 호흡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아내와 대화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다. 플로깅은 나의 이런 계획들을 방해하는... 훼방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플로깅 자체가 도대체 이 세상이 나아지는 데 어떤 유의미한 효과가 있단 말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플로깅이 지구의 환경 개선에 티끌만큼의 기여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담배꽁초 하나 주으면 그 하나 만큼은 수질이 덜 오염될 테니까. 근데 그것이 '창백한 푸른 점'마냥 작은 것이라 과연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조차 있는가?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떨쳐낼 수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멈춰서서 아내를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현재 상황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쓰레기를 줍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엄밀히 말하면 상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묵묵히 내 갈길을 걸어나갔다. 예상 대로 아내와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자, 탁탁탁탁 아내의 운동화가 지면과 마주치는 소리가 더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잡기 위해 약간은 뛰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플로깅해보니까 어때?"


생각보다 아내는 오늘 경험이 만족스러웠나보다. 나는 그와는 반대로 짜증이 났고, 어떤 점이 짜증스러웠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다행히 아내가 잘 들어주었고 나의 짜증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다음 번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내가 또 플로깅을 하길 원한다면? 그 땐 우리 둘다 만족스러운 어떤 합의점, 새로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널 쓰기」에서 안내하고 있는 대로, 문장/문법/단어/표현 등에 대한 자기 검열을 최소화한 채 흡사 무의식에 흐름에 따라 써갈겨내려와보았다. 나는 우선 나 자신을 대상으로 「저널 쓰기」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그 다음은 내 주변 특히 아내를 대상으로 해보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블로그에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해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 이 또한 훗날의 나를 구성하는 어느 한 점에 해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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