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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n 24. 2023

지하철 사람들, 그리고


23.06.23.금요일


「저널치료」에서 제공하는 지침에 따라, 간단하게 시작명상을 하며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가능한한 생생하게!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현재로 전해져온다. 가슴이 약간 저릿해온다. 가만 보면 나는 가슴 저릿하다는 표현을 참 자주 쓰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각각의 저림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뭔가 참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직접 경험하면 그런 느낌이 오는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런 느낌.


내가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들르는 금정역. 1호선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바로 그 역이다. 나는 매번 9-2에서 타는데, 그러니까 내가 타는 1호선역 당정역에서 늘 9-2에서 탑승하는데, 그렇게 금정역에서 내려 바로 맞은편에 4호선 승강장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4호선의 9-2로 바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승강장에는 늘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매일, 거의 매일, 아니면 어쩌면 말 그대로 매일 나의 어떤..나의 안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이 가장 먼저 타는 것이다 !!!!!!!


예전에,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읽었던 아주 우연히 읽었던 기사였나 칼럼이었나 사설이었나 아무튼 어떤 글의 제목이 생각난다. 아마 주입식 교육 일변도의 공교육 현장에서, 간혹 가다 행해지는 보충 수업? 또는 나름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어느 교사가 마련한 특별한 수업 현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읽었던 칼럼의 제목이 바로 「앞선 자 뒤 되고, 뒤선 자 앞 되는 사회」였다. 우리 나라의 어떤 질서 구조, 사회 문화 등을 비판하는 취지의 제목이었고, 그게 상당히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남았던 것이다. 그래서 거의 20년이 된 지금까지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금정역 9-2 구간에는 대한민국의 질서를 아주 능멸하는 듯한 기괴한 현상이 벌어진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9-2의 거의 맨 앞줄 아니면 두번째 줄에 서게 되는데, 가장 늦게 헐레벌떡 뛰어와서 더이상 뒤로 줄 설 자리가 없음을 확인한 (혹은 확인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늘 출입구의 바로 코 앞에 서있게 된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데... 잠시만 기다려봐

펜을 , 그리고 종이를 좀 찾아봐야겠다. 


7,8은 가장 늦게 와서 가장 먼저 타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PPT도 꽤나 익숙해서, 손으로 그린 다음 다시 PPT로 옮겨 그렸다.)


9-2와 9-3은 바로 앞에 구조물(아마 계단일 것이다)이 설치되어있어, 사람들이 줄을 '뒤로' 길게 설 수는 없는 구조다. 따라서 양옆으로 날개를 펼치듯 줄을 서게 되는데, 그 때문에 아주 나중에 줄을 서기 위해 도착한 사람은 도저히 더 양 끝으로 갈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그냥 스크린도어 코 앞에 서는 선택을 내리게 되는데, 그림에 빨간 숫자로 표시한 바로 그 사람들이다. 참고로 그림 속 숫자는 '도착한 순서'다. 


다시 설명을 반복하자면 나는 보통 2 아니면 3의 위치에 서있곤 한다. 그래서 7,8 사람들이 쏜살같이, 최대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외면한 채 지하철 안으로 그토록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을 늘 목격해야만 하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얼마나...짜증이 나는지. 그러면서도 달리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들 개인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한번 보자. 이것은 애초에 승강장 설계 자체가 잘못 된거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몰리는데 더이상 줄을 서지 못한다니. 질서를 해치는 것은 일개 지각생들이 아닌, 바로 그 역을 설계한 자들인 것이다. 아니면 지하철 4호선을 좀 더 자주자주 보내주든가.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의 문제인가?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광경을 매일 같이 반복적으로 목격하는 것은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다. 이럴 거면 굳이 일찍 도착해서 줄을 설 필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천천히 나와서 문 앞에 줄 서면 되는 일이라면.


그리고 오늘은 임산부석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써야겠다. 이것은 내가 꽤나 자주 경험하는 것인데, 어쩌면 '머피의 법칙'마냥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아니, 편향적인 경험에 근거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임산부석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늘, 임산부도, 남성도 아닌, 바로 비임산부 여성이다!!! 내가 이와 같은 가설을 머리에 장착한지는 꽤 됐다. 그런데 그 뒤로부터 나의 시선은 늘 임산부석에 향해있고, '누가 타고 있는가?'가 희대의 관심사가 된다. 이 때 내 머릿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테스트가 돌아간다.


1) 성별은 무엇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테스트 1)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아니 거의 매번 '여자'라는 답변이 나온다.


2) 그 여자는 임신을 했는가?


테스트 2)에서는, 아주 간혹가다 임산부가 앉아있는 경우를 보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임신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이는 중년 여성이다. 분명 그들은 임신의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 글을 다 쓰고 나니 생각난다. 상당히 젊은 여성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러나 임신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뱃지 등)


무엇이 작용하고 있을까?


만약 나의 편견이 현실에 꽤나 근접하다면, 다시 말해 '실제로도' 남성이 임산부석에 앉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맞다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 '성별프레임'이 과도하게 나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아이를 위해 임산부석은 무조건 비우라고 그렇게 광고를 하고 안내멘트를 틀어대면서... 임신도 안한 여자만 앉는다. 여자는 그래도 임신의 가능성이라도 품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나는 임신한 적이 있거나, 혹은 할 예정이다' 라고. 남자는 그럴 가능성이 말 그대로 '제로'다 !!! 남자가 거기 앉는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판정'모드를 강제로 가동시켜버린다.


'어 저건 남잔데... 남자는 임신 안하는데...'


반대로 여자가 앉는다면 


'임신 한게 맞나?'

'아 초기면 모를 수도 있지'

'나이가 들었지만 지금도 임신할 수 있지...'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임산부석을 정한 것은 누구인가?

임산부석을 정하고, 누구는 앉아도 되고 또 누구는 안되고... 이 모든 것은 누가 정한 것인가?

전혀 연관성 없어보이는 두 개의 사건으로부터 하나의 공통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시스템 설계자들.
그들이 문제의 주범이다.


참고로 오늘 퇴근하고 산본중심상가에서는 짝퉁명품가방을 돗자리 깔아놓고 파는 사람을, '단속' 모자를 쓰고 있는 할아버지가 쫓아내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다. 누구의 잘못일까? '불법'으로 장사하는 사람의 잘못인가, 아니면 인정머리 없이 어느 가여운 인생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저 할아버지의 잘못인가?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한 순간 저 보부상에게 동정심을 느끼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속한 이 시스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려나?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간다. 그러다가 또 저 할아버지의 가족도 떠오르는데, 즉 각자에게 사정이 있고 각자 필요에 따라 행동한 결과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팔짱끼고 지켜보는 '단속'할아버지와 최대한 느린 속도로 보따리를 싸고 있는 가방아저씨


그렇다고 해도...

당장 장사를 할 수 없게 된 보부상의 마음은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정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면 그만인 것인가 저 '단속'할아버지는?

여기서도 나는 다시한번 '시스템 설계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 판을 누가 만들었는가...

나는 거기에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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