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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May 28. 2023

목적지는 존재하는가

예비군 아니, 민방위 1년차 훈련을 받으러 다녀왔다. 무려 4시간 동안 4명의 강사로부터 4개의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서로 다른 4명의 강사로부터 좋은 강의의 특징은 무엇인지' 뽑아내기로 하였다. 


요새 좋은 강의를 구성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져서일까?

전혀 지루하지 않게 4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매우 만족스러운 민방위 훈련을 받고 온 것 같다.


그런데 그보다도,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느꼈던 건 다름아닌 쉬는 시간 때였다.


민방위 훈련장의 길 건너에 있는 야산을 발견하였다. 약 360개의 계단을 오르도록 되어있었고, 쉬는 시간이 15분 주어졌을 때 그곳을 올랐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공기와 향긋한 냄새를 즐기며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다시 훈련장으로 복귀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러나 어쩌면 언젠가 한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던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가장 훌륭한 발견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에 관한 깨달음이었다. 

목표를 설정하라, 목적지를 생생하게 그려라... 이런 류의 가르침을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목적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을 설정하는 것이 애시당초 가능한 일일까? 이 세계가 너무도 불확실해진 나머지, 목적지를 그릴 수 없다면...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빠르게 실패하기]에서 던지는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원한다고 '생각'할 때, 실은 그 무언가의 어느 한 측면만을 보고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무언가의 여러 다른 측면을 알게 되는 순간, 덜 원하게 되거나 심지어는 혐오하게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자연 씨는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 꿈이다. 비록 큰 돈을 벌진 못하겠지만, TV 속에 나오는 자연인처럼 적당히 의식주를 해결하며, 때로는 다 큰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받으며 살아간다면 적어도 도시에서의 삶보다는 행복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나자연 씨는 과연 호시탐탐 나의 피와 살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벌레 무리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까? 그 존재를 알아차린 이후에도 여전히 나자연 씨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길 원할까? 어쩌면 개명을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방문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목적지를 설정하려는 사람들은, 사실 그 목적지의 다른 측면들을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면'하는 대신 '외면'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멀리 있는 목적지를 그리는 대신, 지금 당장의 내 느낌에 충실하라.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응답하라.


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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