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뜽삼이 Jul 17. 2023

설치류의 폭동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면 거의 하루 종일 나의 양 미간이 찌푸려져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그 적군 (일명 설치류)의 위세는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오늘도 몇몇 사건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몇몇'이라는 것이다. 아주 가끔씩만 나를 자극하는 것이 아닌, 이 사람은 거의 매사에 나를 자극하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에 대해 어떤... 열등감? 혹은 경쟁의식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다. 아내와 함께 이야기해보면서 이는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에겐 아내가 있기에 이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곤 한다.

"그 사람이 말 걸면 그냥 눈 한번 마주치고 대답하지 말아봐"

"~~~~라고 대답해봐"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내가 지향하는 사람됨에서 좀 벗어나있는 것들이다. 정확한 동기를 내가 파악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꽤나 미성숙한 방식으로 자기 안에 있는 어떤 느낌들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만약에 아내가 제시한 방법을 따르게 되면 나 역시 미성숙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 같아 썩- 구미가 당기진 않는다. 물론, 그 역시 언젠가 내가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사용해볼 수 있을 법한 방식들이다. 때때로 그 사람을 혼쭐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전 11시에 회의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완전히 잘못 짚었다! 함께 아이디어를 모으고 발전시키는 회의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자리가 되고만 것이다! 내가 그 동안 생각했던 내용을 준비해서 회의에 모였는데, 사람들은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아이디에서 대해 매우 가혹한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가장 답답한 것은 바로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조차 못한채 생산적이지 않은 비판만을 늘어놓았다는 점이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원하지 않는 피드백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회의가 흘러가버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무가치한 의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설치류씨는 본질과 가장 거리가 먼 의견만을 늘어놓았는데 이를 테면

"팀이 몇 개죠? 500개면 이거 언제 누가 다 관리해요?"

"그런 구체적인 내용도 담겨있지 않은 기획안인데... 여기에 대해 의견을 드리는 것은..."

이런 식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하등 쓰잘데기 없는 무쓸모 피드백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피드백은 받는 사람보다는 주는 사람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가 딱이다. 지금 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이런 아이디어를 준비해왔는지에 대해 관심도 갖지 않고 자기 기준에 따라서만 비판한다. 이 때다 싶었던 것인지.

그래서 오늘 회의는 아주 최악이었다. 무엇을 위한 회의인지도 모르겠고, 누구를 위한 회의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시작부터가 잘못됐다. 팀장님이 주선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저 딸려들어온 사람들이다. 팀장님과 나만 <인플루엔서>책을 좀 읽었고,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논의가 가능한 반면, 나머지 두 사람은 그 내용을 공유하고 있지 못하므로 사실 내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아이디어를 준비한 것인지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회의는 회의 자체가 매우 실패한 회의다. 설치류 씨의 미숙한 인성도 물론 한몫하는 것이지만, 그 미숙한 인성이 표면으로 튀어나와 설칠 수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주요한 환경적 요인일 테니.

그 외에도 설치류 씨는 나에게

"고민만 하지 말고 이제 좀 실행을 하셔야 될 것 같은데"

와 같은 말을 두 번이나 하였고, 나는 그걸 들으며 이 사람 정말 희한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말이 내게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검토가 전혀,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듯 보였다.

회의의 결과도 매우 실망스러웠거니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고, 심지어 어제 잠을 별로 그리고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오후 컨디션이 매우 저조했다.

퇴근 직전, 오후 5시 경 내 맞은편에 앉은 설치류씨는 

"그런데 OO님 오늘 왜 이렇게 얼굴 표정이 안 좋아요?"

라고 묻는데 이 사람은 내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걱정을 한다거나 혹은 나를 위하는 마음에 한 소리가 아니란 것이다. 그저 떠보기 위한 얕은 술수에 불과한 것이다. 아내의 해석에 따르면

'직장에서 감정 조절도 못하는군. 내가 당신보다 우위에 있다.' 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란다.

어쩌면 그 해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순간 진실을 이야기할 뻔했다. 

"오늘 그냥 피곤하네요. 특히 일요일에서 월요일 넘어올 때 제대로 자지 못해서..."

말을 하면 할수록 저 사람의 속뜻을 내가 알 수 없어 나 역시 진실된 반응에서 멀어진다.

사실 가장 첫 반응은 당황스러움이었다. 갑자기 나의 얼굴 표정에 대해 묻는다고? 이 사람이 나의 안색과 느낌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해줄 사람인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당황스러움은 곧 불쾌함으로 이어진 것 같다. 무언가 떠보는 것인가? 이 겉과 속이 다른 설치류를 앞에 두고 나 역시 마음을 놓을 수 없던 것이다. 

"오늘 그냥 피곤하네요. 특히 일요일에서 월요일 넘어올 때 제대로 자지 못해서..."

와 같이 이야기해놓고서도 뭔가 마음이 여전히 편치 못했는데, 이 사람에게는 내가 정말 왜 얼굴이 안좋은지 진실된 답변을 하기가 꺼려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떠올리고 그걸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다름아닌 바로 설치류가 이 느낌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들로...

그러나 괜찮다.

나는 아내와 함께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자유와 기회가 있다. 그렇다면 설치류는 그저 설치류의 위치에 머무르게 되고, 나는 내일 또다시 나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향하는 나의 여정은 멈추지 않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일요일 질 무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