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끌어가지 못하는 이유
ASK 성찰 에세이
Q. 질문 - 왜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이끄는 것이 더 어려울까?
위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하기 전에 질문에 대한 전제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정말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보다 나 자신을 이끄는 것이 더 어려운가? 이끈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대로 혹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나 한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 사람, 나만 설득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내려면 우선 그 행동에 대해서 설득을 시킬 대상이 두 명 이상이 되는 것이다. 첫 번째로 나 스스로가 납득을 해야 하고 그 후에 두 번째로 대상에게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두 배의 노력이 들어간다. 이렇게 보면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이 오히려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보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진정으로 누군가를 이끌기 위해서는 내가 우선 변화해야 하고 그 후에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가 있다. TV에서 A제품을 광고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용해보고 정확한 후기를 토대로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보면 나를 이끄는 것과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그렇다면 왜 나를 이끄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나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현재 나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지점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나아갈 지점’이 상실되었다.
『88만 원 세대』라는 책으로 주목을 끈 홍세화 씨가 쓴 최신작 『결:거침에 대하여』에서 보면 한국사회는 ‘완성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완성되었다는 것은 더 수정하거나 변화될 것이 없는 상태로 ‘회의하지 않는’ 모습을 의미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고 의심을 품지 않는다. 질문을 품고 논리를 만들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내야 하는 힘을 길렀어야 하는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질문’하는 법을 훈련한 적이 없다. “박근혜가 불쌍하니 미통당을 뽑아줘야지”라고 하는, 아직도 왕조시대를 살고 계시는 일부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회의하며 현재의 삶에 대한 의문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야 나를 이끌어 가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능력이 거세되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을 이어가 보자. 가정과 학교에서 질문하고 회의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그 이유는 ‘한국전쟁’에 있다고 본다. 전쟁은 우리를 어떻게 바꿨을까? 우리의 뇌를 뇌과학자들은 세 가지로 나눈다. 제1의 뇌로는 본능과 생존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라고 불리는 뇌간, 제2의 뇌는 감정을 담당하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편도체, 그리고 제3의 뇌는 옳고 그름과 미래를 예측하는 ‘영장류의 뇌’라고 불리는 전두엽이 있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활성화되는 뇌는 이 세 가지 뇌 중에서 어떤 부분일까? 잠깐의 판단이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전쟁에서는 ‘파충류의 뇌’가 활성화된다. 그 결과 감정,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는 능력은 현저하게 퇴화되어버린다. ‘질문할 여유’ 따 따위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군’, 아니면 ‘적군’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적극적으로 ‘어떤 지점, 방향’을 향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전쟁 속에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후 ‘가난’으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독재자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발버둥 쳤던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우리 스스로 성찰해서 어떤 방향을 설정하여 나아갔던 적이 없다.
올해로 전쟁이 끝난 후 7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우리 세대는 전쟁을 경험한 적도 없고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 위 세대들의 영향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살아갈 앞길은 ‘성찰하고 회의하며’ 나아갈 지점을 그려가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가 나를 이끌어 갈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이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