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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 Sep 13. 2017

92년생 김지영의 역사

82년생 김지영씨와 나는 열 살 차이다.

자라서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이제 여자도 똑같이 교복 입고, 가방 메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해진 지 오래고,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과 다름없이 적성을 고민하고, 직업인으로서의 미래를 계획하고, 그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했다. (『82년생 김지영』, 72.)



82년생 김지영씨와 나는 열 살 차이다. 내가 어릴 때, 여자니까 공부를 못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었다. 엄마는 내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미술과 영어를 가르쳤다.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안경 쓴 남자 선생님은 바다 위에 섬이 있는 그림을 가져와 island, sea, blue 따위의 단어를 알려줬다. 초등학교도 채 입학하기 전의 일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결혼 후 부산에 정착한 나의 부모는, 마치 공부만이 모든 것을 구원하리라 믿는 것 같았다. 부산은 잔잔하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도시였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떠나는 일을 꿈꿨다. 최고가 되어야지, 일 등을 해야지, 엄마는 아침마다 내 머리를 한 올도 빼놓지 않고 바짝 빗어 묶었다. 삐쭉 올라간 눈꼬리만큼이나 새침하고 완벽하게 나는 엄마의 성실하고 사랑스러운 딸로 자랐다. 하고 싶은 건 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했다. 어딜 가서도 기죽지 않았다. 나는 커서 대통령이, 아나운서가, 판사가,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어느 날, 뺨을 툭툭 때려놓고 장난이었다며 눙치는 남자애의 뺨을 야무지게 올려붙였던 날, 걔 엄마가 날 보고 그랬다. "요즘 여자애들은 기가 세서 남자애들 기를 다 죽인다니까." 기 따위 죽을 테면 죽으라지. 나는 그런 부모의 아들내미들을 열심히 노려보며 학교를 다녔다.



김지영 씨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40번부터 번호를 매겼다. 나는 55번이었다. 급식을 늦게 먹어서 기분이 나빴다. 교훈이 '진선미'였던 여자 중학교에서는 보건 시간에 순결캔디를 나눠줬다. 진분홍색 봉지에 든 딸기맛 사탕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두 번 접어 신는 커버 양말을 신었다. 발목 양말을 신으면 여학생의 품위가 떨어지고, 발목을 보이는 건 '야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였다. 곱씹을수록 이상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여대에 진학했다. 술게임을 빙자한 성희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곤 했다던 모 남녀공학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아, 여대에 오길 잘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피곤했다. '여대'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씌워진 알 수 없는 이미지들과도 싸워야 했다. "너는 보통 이대생들 같지가 않더라." 내가 아는 이대생만 해도 300명은 될 텐데, 그 애들 중에 보통 이대생은 누굴까? 월요일엔 2300원짜리 참치 김밥에 마요네즈를 뿌려먹고, 지난 토요일에는 학교 앞 스타벅스에서 7000원짜리 프라푸치노를 사먹은 나는 자주 '이대생'이 아니었다가, 아주 가끔 '이대생'이 되곤 하는 걸까, 궁금했다.


생각할 줄 아는 여자는 우울하다.



진짜 문제는 학교 밖으로 발을 내딛으면서부터 시작됐다. 가정과 학교에서 받는 차별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학교 바깥에서 받는 차별은 실질적인 미래계획을 좌절시킨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희석시킨다. 안 뽑는다. 적게 뽑는다. 이왕이면 남자를 뽑는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수많은 여자들이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지만, 실제 언론사에 입사하는 비율을 보면 남성이 더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신문보단 방송이 심하고, 기자보단 PD 공채에서 극심하게 나타난다. 재작년, 모 신문사 최종 면접 당시 여성 지원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격론이 오갔다. 언시생 커뮤니티도 뒤집어졌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신문사 입장에서 남자를 더 굴리기 좋으니까 뽑는 거 아닐까요? 기업의 선택인데 문제될 것 없다고 봅니다." 학벌주의, 지역주의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정작 성차별의 영역에서는 '합리'를 운운하는 선택적 합리주의자들은 잊을 만 하면 찾아와 속을 뒤집는다. 멍청한 소리를 골라 하던 남자 스터디원이 가장 먼저 취직하고,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남자 동창생들이 초봉 5천 주는 대기업에 재빠르게 입사하는 걸 본다.


통계를 본다. 생각한다. 끔찍하게도 변하지 않는 사회가 보인다. 82년생 김지영씨가 사는 사회와 지금 내가 사는 사회는 한 뼘 만큼이라도 달라졌나 생각하다가, 우울해진다. 선택지를 본다.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으면 말끔하고 해사한 얼굴을 한 채 방긋방긋 웃는 무해한 여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공정하다는 생각 대신 불공정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이라도 쳐봐야지. 우울한 생각을 해봤자 현실이 달라지나, 네가 큰 사람이 되어서 세상을 바꾸렴, 넌 너무 예민해, 넌 너무 매사에 비판적이야, 쉽게쉽게 가자, 여유를 가져 무조건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고. 남들이 내게 해줬던 말들을 스스로에게 돌려 준다. 생각을 멈추려 애쓴다. 그러나 생각이라는 것은 심장박동만큼이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어서, 나는 생각에 끌려간다. 나는 괜찮을까? 사회가 나아질까? 우리는 괜찮을까? 정말로?

출처: 한국기자협회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82년생 김지영』, 123.)

아무래도 싸우는 여자가, 나은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차별이 어디 있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대부분 차별이라는 단어를 자의적으로 다루는 이들이다. 거리에서 여자를 때리고, 투표권을 주지 않고, 여자를 싫어해서 여자와 자지 않는 게 아니라면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떠올리다가, 답답해진다. 생각할 줄 아는 여자는 우울하다. 생각할 줄 모르는 멍청이들을 감당해야 하니까.


장면 하나를 복기한다. 장난이랍시고 뺨을 툭툭 치던 아홉 살짜리 남자애, 표정이 바뀌는 날 보고 "장난이야"하고 뺨을 다시 만지던 그 애의 따귀를 야무지게 올려붙이던 순간. 제가 준 대로 내가 되갚아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만지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남자애의 얼굴과, "요즘 여자애들은 기가 세서 남자애들 기를 다 죽인다니까." 그 말을 했던 그 애 엄마의 표정. 그들 앞에서 기 따위 죽으려면 죽던가, 잘 노려보고 잘 싸우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나는 원래부터 잘 싸우던 애였다. 오래 생각하고 지나치게 자주 멍청함들을 감당하느라 우울해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인내심보다는 전투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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