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이 걸음을 뗄 때마다 자동으로 숫자가 세어진다. 며칠 전까진 숫자가 다섯에서 멈추었는데 오늘은 무려 서른까지를 셌다. 손주는 폭발적으로 걷기 시작했던 며칠 전부터, 다섯 걸음을 걷고 넘어지면 곧바로 일어나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알파벳의 W자 모양으로 양팔을 들고 굳게 다문 입으로 넘어지고 걷기를 반복하는 모양새가 무슨 국가적 사명을 수행하듯 비장하게 보였다.
“성윤아, 고만해! 힘들어”
딸아이는 손주 걱정을 했지만 나는 미카엘이 걸음을 뗄 때마다 ‘하나, 둘, 셋 , 넷, 다섯’을 반복하며 걷기를 응원했다.
미카엘보다 두 달이 빠른 4층 친구네 손자는 숱 많은 머리카락에 키도 한 뼘은 더 커서 같이 있으면 형, 동생으로 보였다. 딸 둘과 조카 둘을 키워낸 탁월한 육아전문가 4층 친구에게 틈만 나면 육아정보를 묻곤 했는데 걸음걸이는 미카엘이 더 빨랐다. 세례명인 미카엘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내 확신에 남편과 딸은 피식 웃었다.
미카엘은 가톨릭의 3 대천사 중 하나로 성경에 사탄의 군대와 싸우는 모습으로 등장하여 힘이 센 이미지가 있다. 사위가 결혼 전 세례 받으며 가브리엘로 세례명을 정하는 것을 보고 나는 손주 둘을 보면 하나는 미카엘로, 다른 하나는 라파엘로 지어 3대 천사를 한 집에 살게 하겠다는 폼 나는 결심을 했었다. (여아인 경우 세례명은 미카엘라, 라파엘라가 된다) 딸아이 임신소식을 듣고 세례명을 바로 미카엘로 정하고 태아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때 마침 출생일이 10월 4일이어서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201004중 1004란 숫자가 마치 천사 세례명을 계시하는 것 같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부자지간으로 한 집 식구가 됐으니 다음 손주는 라파엘이라는 세례명을 타고난 것이리라.
미카엘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해서인지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주방에 재미를 붙인 뒤에는 무거운 냄비 등 식기류를 들었고 어느 날은 2킬로 무게의 역기를 들고 나타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남자의 힘!’이라고 외치며 미카엘을 응원했다. 혹자는 ‘미카엘이 힘센 천사인데 아버지 가브리엘보다 힘이 세어서야 되겠냐’며 두 명의 세례명을 바꿔야 한다는 인간적인 충고를 하기도 했지만 나는 오늘 무거운 진공청소기를 들고 나타난 미카엘을 보며 ‘만약 세례명을 삼손이라고 정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