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

by 안나


“엄마 내가 왜 전화했겠어?”

평상시 들어보는 딸아이 말씨가 아니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첫마디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뒤이은 딸아이의 두 번째 질문은 “엄마, 나 다시 이사 갈까?”였다.

35살에 이사한 소도시에서 딸을 초등학교에 보내고 학부모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간 학교 면담에서 선생님의 첫마디는 딸아이가 착하다는 말이었다. 칭찬으로 들렸다. 2학년 면담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3학년 면담에서 한 번 더 그 말을 듣게 되자 “그런데 선생님. 착한 게 경쟁력이 될까요?”라는 질문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한결같이 착하기만 한 딸의 장점을 세상에서도 그대로 수용해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딸아이는 온순하고 착한 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자랐다.

이사한 도시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놀이터 삼았던 성당 생활로 돌아갔다. 성당에 있다 보면 딸아이는 남동생을 유치원 차에서 받기도 하고 학원도 데리고 다녔다. 동네 엄마들은 딸에게 ‘착하다’는 말과 비슷한 ‘작은 엄마’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딸은 7년을 만난 남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나는 딸에게 ‘사위의 조상 중에 필시 나라를 구한 위인이 있을 거야’라고 하며 딸을 시집보냈다.


큰 손주가 태어나던 시간, 나는 딸에게 친정엄마로서 빚을 졌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생긴 불면증에 습관처럼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나는 그렇다 치고 그 날은 공교롭게도 남편의 핸드폰까지 울리지 않아 한 밤중에 진통으로 병원에 가는 딸아이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친정부모의 응원도 없이 출산을 마친 딸아이는 “엄마 나 아직 실감이 안 나.”라며 예의 그 명랑한 말투로 출산소식을 전했다.


딸아이는 연이어 두 번의 질문을 던지고는 무슨 꿈 꾼 거 없느냐고 물었다.

“무슨 꿈? 혹시 태몽?”

딸아이는 둘째 아이를 가진 거였다.

친정과 떨어져 살며 첫아이 육아로 지쳐있던 딸은 둘째 아이까지 갖게 되자 부모와 친구가 있는 친정 가까이로 오고 싶어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열흘 만에 신혼 집을 정리했고 더 빠르게 친정 근처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딸아이의 이사는 이렇게 급속히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 부부는 매일 손주를 볼 수 있는 선물을 받게 되었다. 우리 부부의 새로운 육아가 시작된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 ‘작은엄마’라는 닉네임으로 내 시간을 함께 해주었던 딸아이의 육아에 이제 나도 함께 하려한다. 손주가 태어나는 순간 옆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내려놓게 되었다.


영화에선 주연을 살려주는 조연이 있고 그림에는 주제를 살려주는 배경이 있다. 딸아이는 그렇게 조연으로, 배경으로 상황을 살려주는 물 같은 아이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딸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 부부도 조연으로 배경으로 물같이 흐르며 육아의 한 부분을 담당하려 한다. ‘사위를 닮았나, 딸을 닮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손주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8개의 웃니 아랫니를 보이며 헤벌 쩍 웃는 얼굴로 우리 부부의 마음을 빼앗은 손주 미카엘(세례명)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2020년 9월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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